“화분과 화환은 정중히 사양합니다”

이 종 구 중앙대 교수·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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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연시를 보내면서 여러 방송사가 진행하는 연예대상이나 연기대상과 같은 연예프로를 즐겨봤다. 한해동안 빛나는 활동을 한 연예인들을 격려하고 시상하는 프로들이다. 대개 선정된 수상자가 무대에 올라와 트로피를 받는 동안 동료와 선후배, 가족들은 수상자에게 꽃다발을 안겨준다. 수상자는 주체할 수 없이 많은 꽃다발에 파묻혀 수상소감을 전한다. 지난날 남달리 고생하면서 어렵게 정상에 오른 수상자는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한다. 정상에 올라 꽃다발에 파묻혀 감격해 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순간 필자도 그들에게 꽃다발 하나를 전하고 싶다!

이렇듯 마음으로 축하하고, 존경하고, 사랑하는 이에게 꽃다발을 안겨주는 건 우리의 미덕이다. 승진, 당선, 취임, 결혼, 생일, 회갑, 개업과 기념식 등에도 빠짐없이 축하의 꽃을 보낸다. 큰 행사엔 주로 꽃다발보다 화분이나 화환 등을 전한다. 화분과 화환 등에는 축하의 메시지와 함께 보내는 이의 이름과 직함을 큰 글씨로 박은 리본을 다는 것도 빠지지 않는다. 그러나 때론 이 화려한 꽃들이 무조건 아름답기보다 다소 권위적이고 과시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특히 화환은 더욱 그렇다.

화분과 화환 등은 미술전시회장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어떤 경우 성대한 개업식장 못지않게 많은 화분과 화환 등이 늘어선 전시회도 있다. 전시회를 여는 작가가 조금 높은 사회적 지위에 있다든가 또는 잘 나가는 배우자를 둔 작가일 경우 화분과 화환 등의 세례는 더욱 넘친다.

그런데 전시회장에 놓인 대형 화분이나 화환 등은 조용한 전시장의 작품들과 썩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때론 보낸 이의 마음과 성의를 무색하게 어수선하고 또 경박하게 보이기도 한다.

미술전시회는 최대한 작품들이 돋보이도록 여러 조건들을 고려, 세심하게 디스플레이를 해놓은 절제된 공간이다. 가령 회화작품일 경우 주제, 형태, 색채, 크기, 연대, 동선 등을 고려해 작품들을 설치한다. 마치 한편의 이야기를 기승전결로 구성하듯 동선을 따라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배치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디스플레이도 작품 창작 못지않은 창의적인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질서 있고 세심하게 작품들을 걸어놓은 전시장에, 화려하게 튀는 각양의 화분과 각색의 화환 등은 오히려 작품들의 빛을 잃게 하고 전시 효과를 감소시킨다. 더욱이 크게 노출된 화환의 꽃들은 전시회가 지속되는 동안 흉하게 시들기도 하고, 거기에 매달린 리본만이 보낸 이의 이름과 직함을 ‘비문화적’으로 과시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래서 전시회장에 놓인 화환은 보낸 이의 정성어린 마음과 달리 때론 받는 이에게 곤혹스러운 선물이자 처치 곤란한 물건이 되기도 한다. 그런 탓에 요즘 미술관이나 전문화랑, 뜻있는 작가들이 보낸 초대장이나 팸플릿 등에는 “화분과 화환은 정중히 사양합니다”라는 문구를 적어놓은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래서 이제 미술전시회에 대형 화분과 화환 등을 보내는 관행과 문화를 바꿀 것을 제안하고 싶다. 작품 감상을 훼방하는 화분이나 화환 등보다 다른 방법으로 축하의 마음을 전하자는 것이다.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전시회장을 찾아주는 일이고 불가피하게 전시회에 올 수 없는 사정이라면 전화나 축전 등을 보내 축하해 주는 정도로도 충분하다. 주변 사람들에게 관람을 권고, 많은 이들이 전시회를 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작가들은 더욱 고마워할 것이다. 꽃을 전하는 미덕은 아름답지만, 특정 행사의 기념식과 같은 1회적인 행사와 달리 여러날동안 열리는 전시회, 더욱이 최선으로 작품들이 돋보여야 하는 ‘문화적’인 장소에 커다란 리본이 매달려 있는 꽃들의 풍경은 결코 아름답지가 않다.

/이 종 구 중앙대 교수·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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