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와 한국미술

이 종 구 화가·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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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나라 젊은 작가들의 작품들이 해외 미술시장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 그동안 박수근·김환기 등 작고 작가들의 작품들이 주로 해외시장에서 인정받아 왔다면, 아직 국내에서 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젊은 작가들이 해외 미술시장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리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이제 갓 20대 후반에 불과한 한 여성 작가가 올 한해 해외 경매에서 무려 2억9천만원 이상의 매출을 올려 놀라게 했고, 이밖에도 5~6명의 작가들이 1억원 이상의 판매실적을 올렸다고 한다. 이들의 그림 값도 국내미술시장의 5배 이상 높은 가격으로 낙찰되는 등 일찍이 볼 수 없었던 미술품 호황이 오랜 기간 침체로 어두웠던 미술시장을 밝게 해주고 있다.

이에 앞서 몇해 전부터 중국 작가들은 이미 해외미술시장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려왔다. 중국 작가중 대표 주자의 한사람인 장 샤오강은 지난달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텐안먼 광장을 그린 풍경화가 21억5천만원에 낙찰돼 세계 미술시장을 놀라게 했다. 그동안 미술시장의 변방이었던 아시아의 작가들이 최근 국제무대에서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고 약진하는 모습은 아주 고무적인 현상이다. 서구 작가들은 자국에서 인정받으면 바로 세계미술시장에서 인정받을 수 있었지만, 제3세계와 비 서구작가들은 자국에서의 성공과 별도로 국제무대라는 또 다른 장벽을 개척해야만 하는 어려움이 엄연히 존재해 왔기 때문이다. 이제 아시아의 미술도 당당하게 국제무대에서 인정을 받고, 더욱이 한국의 젊은 작가들이 작품성을 인정받아 높은 대우를 받는 건 곧 한국미술의 위상이 크게 높아진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한국 작가들이 해외시장에서 인정받아 높은 값에 작품이 팔리는 현상의 이면에는 아쉬운 점도 있다. 일부에선 중국 작가들의 틈새시장에서 생긴 거품에 불과하다는 부정적인 시각도 있지만, 그보다도 본질적인 건 한국 작가들의 작품에 담긴 정체성의 문제가 아닌가 한다. 한국 작가들의 작품들인데도 서구에서 유행하는 서구 작가들의 작품과 내용적으로 차별성이 없다는 것이다. 요즘 잘 팔리는 작품들을 보면 대개 지난날 서구에서 유행했던 극사실주의나 팝아트 틀에서 국적 불명의 이미지와 아이콘의 결합, 독특한 재료의 사용, 소재주의 등 한국적 삶의 깊이가 담겨 있지 못하다는 평가가 많다. 그런 면에서 국제미술시장의 선풍을 주도하는 중국작가들은 지난날 자신들의 역사나 인물의 도상을 서구의 팝아트와 결합, 중국적 특성이 짙은 작품으로 중국 미술의 정체성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일전에 미술사학자 안휘준 선생은 한국미술사에 편입될 수 있는 작품과 작가의 원칙과 기준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 바 있다. 창의성·한국성·대표성·시대성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성과 시대성 등을 강조한다. 국적 불명의 미술, 아류의 미술, 시대성과 무관한 미술 등은 당대에 아무리 인기가 있어도 결코 한국미술사에 편입될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한국미술사는 보편적인 한국인의 삶과 민족정서를 바탕으로 생산된 한국미술의 족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미술사의 족보는 사람의 족보와 달리 역사적 가치가 있는 명작과 명품만을 기록한다. 조선시대 선조들의 삶과 문화 등을 탁월하게 그린 정선·김홍도·신윤복이나 현대의 박수근·이중섭·김환기 등은 굳건히 한국미술사 중심에 서 있다. 모두 민족성과 시대성이 강한 작품을 남긴 작가들이다. 예술은 국경이 없지만 예술가는 국적이 있다는 말이 있다. 지금 국제미술시장에서 통하는 우리의 젊은 작가들도 당장 서구인들의 인기에 연연하지 말고 근본적으로 한국·민족미술 관점에서 고민하고 창작한다면 더욱 당당하게 세계화에 이르고 국제무대에서 존경받는 한국미술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 종 구 화가·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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