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쯤 수확의 기쁨을 누리고 있어야 할 농촌은 예전의 활기찬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젊은이들은 일과 학업을 찾아 도회지로 떠나고 정들었던 이웃들도 하나 둘 떠나 버려 빈집들이 속출하고 아기의 울음소리는 좀처럼 듣기 어려운 적막한 촌락으로 변하고 있다. 이뿐이랴. 우리 것이 하나 하나 사라져 가고 있다. 우리의 입에서 귀에서 주머니 등에서, 그리고 정신에서도 우리 것이 사라져 가고 있다. 김치대신 햄버거, 우리 가락보다는 전자기계로 만든 소리, 칼로 찢은 히피 청바지 등이 농촌까지 와 있다. 머지 않아 논밭을 매며 흥에 겨워 부르던 농가마저 들을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 농촌을 지키고 있는 50~60대 세대가 지나면 누가 남아 우리 농촌을 지킬 것인가. 농촌은 민족의 뿌리이며 마음의 고향이고 안식처이다. 농촌을 잃는 건 어찌 보면 우리 모두가 실향민이 되는 것이다. 그동안 농촌은 국가의 고도성장정책에 밀려 철저히 소외되고 일방적으로 희생돼 왔다. FTA 태풍이 밀려오고 있는 지금 농촌은 벌거벗은 몸으로 그것을 맞이 해야 한다. 재채기도 하고 콧물도 나고 심한 몸살을 앓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하루 아침에 체질을 바꿀 수 는 없는만큼 우선 긴급처방으로 증세를 치료하고 장기적으로는 어떠한 태풍이라도 능히 견딜 수 있는 강인한 체질을 만드는 방안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야 한다. 정부가 농업을 포기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정부는 농촌에 대한 확실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젠 농촌을 생각하자. 농업을 지키는 건 우리 체질에 맞는 먹거리를 만들어 6천만 국민들의 건강과 생존을 지키는 일이며 맑은 물, 깨끗한 공기, 푸르름 등을 제공해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만드는 일이다. 반만년 무궁한 역사와 전통문화를 계승, 조상의 얼을 이어받고 겨레의 긍지를 살리는 길이기도 하다. 많이 배웠다는 사람들조차 농업을 쇠퇴산업이라고 비하하고 짐스러운 존재인양 몰아치지만 농업은 국가 존립의 마지막 보루요, 국민의 생명을 거머쥔 생명 산업이다. 이제 농촌을 다시 생각하자.
/박원식 농협 인천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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