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독일의 하이델베르크 대학에 방문을 했다. 하이델베르크 대학 고고학과는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을 한 점 소장하고 있었고, 문화재는 원산지에 있어야 한다는 판단에 그리스로 아무 조건 없이 돌려주었는데 그 이유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며칠 전 귀중한 가치가 있는 겸재 정선의 그림 21점을 독일의 한 수도원이 한국의 수도원에 되돌려 주었다. 이 그림들은 1925년 독일 성 오틸리엔 수도원장이 지인에게서 선물 받은 그림을 수도원에 기증한 작품들이다. 병인양요 때 프랑스가 강탈해간 외규장각 도서처럼 ‘약탈 문화재’ 가 아닌, 그야말로 대가를 치루고 사간 그림이다. 민간인이 정상적인 경로로 구입한 그림이니만큼 돌려주지 않아도 우리는 아무런 이유나 항변을 할 수 없는 것들이다.
올해는 한·불 수교 120주년을 기념하는 문화교류 이벤트로 프랑스의 전시가 100여 건에 이른다. 덕수궁미술관에서는 장 뒤뷔페(1901~85)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뒤뷔페는 피카소나 다니엘 뷔랑 만큼 프랑스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작가라고 한다. 또 국립중앙박물관은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소장품 전을 열고 있고,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니키 드 생팔(1930~2002) 조각전이 열리고 있다.
사립기관에서도 환기미술관은 프랑스 설치작가 4인의 ‘공간의 시학전’, 가나아트센터는 프랑스 젊은 작가들의 ‘카오스전’ 등 많은 전시가 열리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와의 이러한 문화교류가 일반 시민에게는 와 닿지 않고 있음을 솔직한 심정으로 프랑스 당국이 알아야 할 것이다.
독일로부터 기증받은 겸재 그림 21점이 프랑스가 야심차게 준비한 100여건의 문화교류를 단숨에 역전시킨 것이다.
한국 정부와 시민단체인 문화연대는 현재 파리국립도서관에 있는 외규장각 도서 297권의 반환을 15년째 요구하고 있다. 1993년 미테랑 대통령은 고속철도 판매를 위해 한국을 방한해서 김영삼 대통령과 ‘교류 방식으로 영구히 대여한다’는 원칙에 동의했다.
그러나 프랑스는 ‘전리품’이다. “한국은 관리 능력이 없다.” “100년 넘게 있었으니 귀화문화재로 봐야한다. 프랑스에 많은 외국인이 와서 보니까 한국보다 유리하다.”라는 억지 주장을 하면서 돌려주지 않고 있다.
프랑스는 한국에 자국의 문화를 알리는 데는 우월감에 사로 잡혀 조직적이고 순발력 있게 처리하면서 정작 한국의 정당한 외규장각 약탈 문화재 반환에는 그 어떤 반응도 없다. 정작 프랑스는 수십 년간의 끈질긴 요구 끝에 2차 대전 중 나치가 약탈한 모네·고갱·세잔 등의 그림을 1994년 독일 정부로부터 돌려받았다.
문화연대는 지난달 28일에 프랑스 정부(문화부 장관)에 외규장각 약탈품을 돌려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대응이 없을 경우 반환소송을 진행하려한다. 약탈당한 문화재를 찾기 위해 정부 차원의 노력이 있어야 하지만 민간 차원에서도 끈질기게 요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는 자타가 인정하는 문화의 나라이다. 문화강국은 다양한 나라의 문화다양성을 인정하고 문화민주주의를 실천하는 토대를 바탕으로 해야만 의미가 있다. 유럽사회에서 가장 이기적이며 자국의 이익만을 위하고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문화강국 프랑스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황 평 우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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