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미술관 개관에 거는 기대

이 종 구 중앙대 예술대 교수·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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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안산시 화랑공원에 자리 잡은 경기도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국내 여러 시·도가 이미 공립미술관을 개관한 것에 비해 비교적 후발주자로 건립된 경기도미술관은 수도권에서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시립미술관 등에 이어 규모면에선 최고 수준이라 할 만하다. 더욱이 미술관을 운영하는 자치단체 규모가 국내 최고의 인구와 도시를 갖췄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역할에 거는 기대가 크다.

지금은 개관 첫 전시회로 ‘호안 미로, 상징의 세계전’을 열고 있다. 호안 미로는 피카소와 더불어 스페인이 낳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작가이다. 사물의 이미지를 단순화시킨 간결한 선과 색채, 절제된 화면과 장식적 효과, 그리고 초현실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독특한 형상의 작품으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전시회를 위해 미술관측은 미로재단과 지난 2년여 기간을 함께 준비했고 미로의 대표적인 작품 100여점을 가져와 전시하고 있다. 전시장 내부는 높고 육중한 벽면과 자연광선을 간접 조명으로 잘 이용했고 작품 이미지를 최대한 고려한 듯 변화 있게 구성된 동선과 빨강·파랑·검정색 등으로 간간이 효과를 준 칸막이까지 그 어느 전시회보다도 섬세하고 세련된 디스플레이가 돋보였다. 아름다운 건축의 미술관과 동시에 잘 꾸며진 전시회는 개관전으로 손색이 없고 품격이 있어 보였다.

그러나 미술관이 새로 집을 짓고 집들이하는 행사로선 뭔가 허전하고 부족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예컨대 집들이 행사장과 가까운 친지나 동네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명망 있고 지체 높으신 손님 한사람을 초대, 안방에다 모셔놓은 형국이라고 할까? 새로 개관한 미술관으로서 참신함과 특성이 보이지 않았다. 개관전이라고 상투적으로 국내 대표 작가나 지역 연고 작가를 초빙해 전시회를 여는 것을 염두에 둔 건 아니다. 관객과 주민 등이 참여하는 이벤트성 행사를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지금 개관전으로 열고 있는 ‘호안 미로전’은 그동안 전시기획사와 언론사들이 매년 학생들의 방학기간을 이용, 예술의 전당이나 서울시립미술관 등지에서 관행적으로 펼치는 수준의 전시회와 내용과 형식 등에 있어 큰 차별성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매머드급 공공미술관으로, 더욱이 앞으로 미술관의 성격과 방향 등을 가늠하게 되는 개관전 내용으로선 조금 실망스럽다. 이때문인지 돛단배 이미지를 형상화했다는 새로 신축한 아름다운 외관의 미술관은 다소 덩치만 커보였고 전시장은 조금 썰렁하게 느껴졌다. 시간의 냄새, 사람의 냄새, 지역의 냄새 등이 빠졌기 때문일 것이다.

미술문화는 동시대의 삶과 정신을 바탕으로 생산되고 미술관은 그것을 담아내는 그릇이다. 21세기 미술관은 더욱 그러한 것을 요구한다. 물론 조급하게 개관 전시회 하나만 보고 앞으로 미술관 수준과 성격 등을 예단할 순 없다. 더구나 개관 일정에 급급, 원래 미술관이 지향하는 제 모습을 드러낼 여유가 없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바라건대, 앞으로 경기도미술관이 소장품 규모나 예산 등에서 비교하기 힘든 조건이긴 하나 근년에 개관, 성공을 거둔 유럽의 미술관들인 빌바오 구겐하임이나 테이트 모던과 같이 색깔있고 참신한 모습을 갖췄으면 한다. 미술관으로 연간 관광객 수백만명이 찾고 지역경제 발전은 물론 도시와 국가의 위상이 크게 높아진 것을 보면 오늘날 미술관의 역할과 힘을 새삼 생각하게 된다. 부디 경기도미술관이 새롭고 창조적인 운영으로 국내 미술문화를 선도하는 대표적인 미술관으로 발전하길 기대해 본다.

/이 종 구 중앙대 예술대 교수·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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