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집 할머니가 노인정을 다녀왔다. 아들과 딸을 앞에 두고 주머니에서 ‘9988234’라고 쓰인 종이쪽지를 펼쳐 보였다. 그리고 그 뜻을 설명했다. “99세까지 팔팔(88)하게 살다 2일동안 앓고 3일째 되는 날 사(4)라진다”는 뜻이란다. 노인정에 모인 노인들이 이 얘기를 듣고 모두 공감했다고 한다. 이 말은 요즘 50~60대 술자리에서도 많이 회자되고 있다.
사람이 건강하게 장수하고 품위 있게 늙어 가는 것 못지않게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전자는 나름대로의 투자와 훈련에 따라서는 가능하다고 하겠지만, 후자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세상의 이치다. 장수하는 조류로 솔개를 꼽는 경우가 많다. 솔개는 70~80세까지 수명을 누리는데 50세가 될 무렵에는 매우 고통스럽고 중요한 결심을 한다. 50이 넘으면 발톱이 노화돼 사냥감을 그다지 효과적으로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부리가 길게 자라는데다 구부러져 가슴에 닿을 정도가 되고 깃털이 길고 두껍게 자라 날개가 매우 무거워져 날아 오르기가 힘들게 된다. 이때쯤 되면 솔개는 산 정상에 올라 고통스런 수행을 시작한다. 먼저 부리로 바위를 쪼아 부리가 깨지고 빠지게 만든다. 새로운 부리가 돋아나게 하기 위해서다. 그런 후 새로 나온 부리로 발톱을 하나씩 뽑아 낸다. 새로 난 발톱으로 이번에는 날개의 깃털을 뽑아낸다. 반년 정도를 보낸 솔개는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30년의 수명을 누리게 된다.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가 세계에서 제일 빠르다고 한다. 65세 이상 노령인구는 지난해 9.1%에서 오는 2015년에는 12.9%, 오는 2030년에는 인구 4명중 1명이 노인인 24.1%로 증가할 전망이다. 이같은 추세라면 절제된 생활과 여건이 갖춰진다면 솔개처럼 고생하지 않고도 9988은 가능할 것 같다. 그러나 노인이 되면 오래도록 고상하고 품위있게 사는 것 못지 않게 ‘사라지는 것’에 대한 걱정도 많이 하게 되나 보다.
그것은 가족을 고생시키지 않으려는 배려,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인명은 재천’이라고 했듯 아무리 현대의학이 발달했어도 앓아누워 있는 기간, 사라지는 날 등을 정하는 건 불가능하다. 234까지도 가능한 날은 언제 올까?
/박원식 농협 인천지역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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