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고향길은 편리한 고속 열차를 타고 달려가도 좋겠지만, 멀미하며 몸살을 앓으면서도 고속도로나 국도 등으로 거북이걸음으로 가는 것도 맛이 있다. 차와 사람들로 콩나물시루 같은 도로에서 쉬엄쉬엄 가는 길옆으로 붉게 물들어 가는 자연을 바라보기도 하고 교통방송도 들으면서 민족의 대이동에 몸을 담그는 게 추석의 맛이 아닌가 한다.
추석명절은 짧은 만남을 위해 긴 기다림의 시간을 준비해 온 정성이 고마운 날이다. 이날만이라도 고향에 계신 노부모를 찾아뵙고 조상님과 한해의 수확을 보살핀 자연과 하늘, 땅 등의 자식으로 감사의 제사를 지내는 아름다운 우리네 고유 명절이다. 신발이 벗겨질듯 뛰어나오시는 부모와 손자들의 고운 한복이 단풍처럼 아름다운 명절이다. 고향의 부모는 땅의 마음으로 자녀들에게 추수한 곡식과 열매를 자랑할 것이다. 이처럼 많은 비에도 곡식은 잘 영글었고 과일도 최고의 당도라며 감동하신다. 설령 다른 해보다 좀 못하다한들 괜찮다고 그분들은 말할 것이다.
먹거리들이 적당히 풍성하며 땀 흘려 거둔 수확들은 모두 너희 몫이라고 하시며 욕심 없이 흐뭇해하실 것이다. 시름을 이런 넉넉한 마음으로 전환할 줄 아는 농부가 고향의 부모이고 우리 조상들의 모습이다. 때가 돼 회귀하는 연어처럼 부모님과 고향땅이 기다리는 곳으로 민족의 대이동에 참여하는 게 바로 감사의 제사이고 우리 민족의 아름다움이라고 느껴진다. 그런데 이처럼 고향을 찾는 이들도 있는가 하면, 요즈음은 단순한 휴가의 의미로 즐기기 위해 해외 관광을 떠나는 이들이 날로 증가하고 있다.
명절연휴가 되면 이들로 공항이 콩나물시루가 된다는 뉴스를 접한다. 어쩔 수 없이 고향을 찾지 못하거나 잃은 이들이 있지만, 가족이나 고향이란 단어의 중요성이 퇴색되고 상실돼 개인주의, 핵가족적인 사고방식 등으로 변질되고 있다. 우리 정서 안에 때가 되면 흐르는 고향으로의 회귀본능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증거이다. 점점 고향과 부모를 잊고 흙의 겸손을 상실한 이들이 허공에 발을 딛고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인 욕심과 쾌락과 물질적 부에 가치를 두고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 못함이 안타깝다. 고향을 잊은 이들이 점점 생명을 잃어 가는 게 아닌가.
/차영미 가톨릭대 성빈센트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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