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문화’라는 말을 자주 쓴다. 여기에 ‘문화예술’이 한 단어처럼 쓰일 때 우리는 쉽게 문화를 예술과 동일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문화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생활 가운데 행하는 모든 개인 행동이나 사회적 활동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그래서 문화는 인간세계에서만 존재한다. 로젠블래트의 말대로 인간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교류하는 모두가 문화의 범주에 속한다. 문화의 큰 틀 속에는 예술이 담겨진다. 그래서 예술은 곧 문화일 수 있지만 문화가 예술인 것만은 아니다. 우리가 ‘문화인’이라고 할 때는 인간이 갖는 가치를 존중하고 모든 생활의 행위에서 품격과 격조를 갖춘 사람을 의미한다. 어떻게 보면 문화인으로 인정받는다는 건 우리가 살아가면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영예이며 대접이다.
우리나라가 경제적 여유를 갖게 됐지만 아직 사회 전반의 품격이 부족한 건 정치에 앞서 문화의 기반이 부실하다는 방증이다. ‘정치인’은 많았지만 ‘정치문화인’이 없었다는 얘기다. 이처럼 문화를 안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어렵다기 보다 진정 문화를 알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이다.
하물며 담을 넘어 다른 나라의 문화를 안다는 건 더더욱 어렵다. 우리가 글로벌 마인드니 글로벌 스탠더드니 하는 건 국경의 벽이 허물어지는 국제화시대에 외국의 문화를 알자는 의미다. 그들과 무한경쟁을 벌여 나가려면 그들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다른 나라 문화를 속 깊이 이해하려는 게 아니라 겉핥기에 급급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영어를 하는 이유는 그들의 문화를 알기 위한 방편이지 말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막연한 영어열풍에 휘말려 있다. 마치 한복을 입으면서 넥타이를 매고 있는 형상으로 말이다. 말은 국제적 언어를 쓰려고 하면서 생각은 한국식으로 하는 상호 배치되는 이중성을 보인다.
우리가 선진국의 속 문화를 모르고 껍데기만 가져와 이런 이중성을 갖는 제도가 우리 주변에 많다. 주5일제가 이중 하나다. 주5일제는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1주일에 이틀을 쉬는 개념이 아니다. 1주일중 하루 토요일을 직장이 아니라 가정에서 근무하라는 취지다. 선진국에선 부부가 함께 사회생산활동을 하고 어린 자녀들은 탁아시설을 이용하게 된다. 그래서 토요일에는 온 가족이 대화하며 집안의 일을 함께 하라는 사회복지차원의 배려다. 우리와 달리 가정의 가치와 가족간 대화가 중시되는 문화에서 사회가 가정의 근로를 사회복지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다. 사회제도나 직장풍토와 삶의 가치관이 우리와 엄연히 다른 환경에서 실시되는 제도가 우리의 여건에 꼭 맞는 건 아니다. 이는 우리가 선진사회 문화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5일제 도입 후 가정불화와 이혼율이 증가했다는 통계는 아이로니컬하다. 이것은 ‘이틀 쉬는 의미만’ 알도록 하고 취지와, 또 우리 여건에 맞는 방법론을 깨우쳐 주지 못한 정책입안자들의 문화의식 부재의 소치다.
한 사회의 정책이나 제도는 문화적 토양이 갖춰져야 소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우리 사회의 리더가 되는 지도자일수록 문화적이어야 함은 바로 그런 이유다. 문화를 안다는 것,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경쟁력이며 생활가치이다.
/이 인 권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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