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화를 위한 미술, 삶과 소통하는 미술

이 종 구 화가·중앙대 예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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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부터 경기문화의전당에선 ‘조국의 산하전·평택-평화의 씨를 뿌리고’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전시회 개막 행사에서 평택 미국기지 확장 예정부지에 들어 있는 팽성읍 도두리가 고향인 가수 정태춘씨가 나와 자신의 고향을 지키려는 의지를 담아 직접 만든 노래를 비장한 목소리로 불렀고, 미술가 60여명은 미군기지 확장으로 인해 고향과 삶터로부터 쫓겨 날 위기에 처한 주민들과 대추리 마을을 지키려는 마음을 담은 작품들을 걸어 놓았다.

개막 행사 막바지에 대추리에서 올라온 주민 10여명이 일일이 소개되자 순간 전시장 분위기는 한껏 고조되고 비장한 분위기로 달아올랐다. 와인 잔을 들고 덕담을 나누며 그림을 감상하는 여느 전시회와는 확실히 다른 행사였다.

이 전시회는 지난 봄부터 작가 수십명이 대추리를 드나들며 미군기지 확장과 관련된 주제의 작품을 제작했고 이를 지난 여름 현지에 비어있는 농협창고에서 전시회를 열었던 것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도심 전시장으로 옮겨 온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이 행사는 개인적인 문제를 담은 일반적인 작품전이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를 공동의 관심으로 작업, 바로 그 현장에서 직접 전시회를 열었다는 점에서 강한 사회적 소통을 목적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른바 현장미술이요, 참여미술이라고 할 수 있다.

참여미술은 이미 군사독재시절인 지난 80년대 민중미술이란 이름으로 위세를 떨쳤다. 민중미술은 정치·사회 민주화와 인간의 존엄성을 향해 외쳤던 저항미술로 민주화운동에서 일정한 역할을 했을뿐만 아니라 미술사적으로도 국내에선 물론 서구의 진보적인 비평가들로부터 높이 평가받아 왔다.

80년대말 서울올림픽기념 국제현대미술전을 기획한 바 있는 미국의 저명한 미술비평가 킴 레빈은 한국의 과천 국립현대미술관과 인사동에서 열리는 수많은 전시회를 본 후 최근 서구에서 유행하는 미술문화와 크게 다르지 않은 한국현대미술에 시큰둥 했다가, 어느 지하의 화랑에서 전시되고 있는 민중미술작품들을 보고 한국미술을 새삼 존경하게 됐다는 말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바로 자신들의 삶을 중심에 놓고 그것을 놓치지 않고 치열하게 대결하고 극복하려는 인간 본연의 삶의 의지가 담긴 예술, 앞선 나라에서 유행하는 사조를 따르지 않고 한국의 특수한 정치적 상황에서 스스로의 내용과 형식을 만들어 탄생한 자생적인 미술운동이라는 점에서 그랬다.

미술은 시대의 산물이다. 지금 대추리에는 많은 벽화와 조각들이 마을의 여기저기를 덮고 있다. 공공기금 지원을 받은 것도 아닌데 대추리 문제에 관심이 많은 작가들이 스스로 찾아와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물감과 붓을 사고 철판과 용접봉 등을 사 빈집의 벽에 그림을 그리거나 철판을 잘라 조각 작품을 만들어 마을의 여기저기에 세워놓은 것이다. 물론 고통을 받고 있는 주민들을 위로하고 마을을 지키고 나아가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다.

역사적으로 예술가는 늘 자유와 평화와 평등을 꿈꿔 왔다. 피카소의 ‘게르니카’가 그렇고 케테 콜비츠의 작품들이 그렇다. 미술작품이 소수자를 위무하고 세상의 평화와 평등을 위해 역할을 한다면 그것은 진정 아름답다. 아름다운 예술이란 개인의 천재적 상상력에 의존하는 모더니즘 시대의 유물이 아니라 개인과 세상, 세상과 세상과 소통하며 인간화를 향한 것일 때 우리에게 진정한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닐까.

이 글을 막 탈고한 직후, 국방부는 대추리의 빈집을 철거했으며 벽에 그려진 일부 미술작품들도 무자비하게 파손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 종 구 화가·중앙대 예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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