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의 유토피아를 꿈꾸며

차영미 가톨릭의대 성빈센트병원장
기자페이지

필자가 살던 어느 섬나라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느 산동네에 아담한 초등학교가 있었다. 이 학교는 거의 모든 학생들이 도시로 떠나 문을 점차 닫게 됐다. 학교 안에는 울창한 나무들이 자리하고 있었고 여기 저기 이름 모를 풀꽃 숲이 있었으며 집짐승과 날짐승들도 놀고 있었다. 평소 생태학에 관심이 많던 이 학교 교장은 폐교되는 학교를 생태학(Ecology)연구소로 개조하려 했다. 연구소 확충을 위해 자그마한 공간을 거주지로 더 지어야 한다고 결정했고 이를 위해 불가피하게 커다란 나무를 한그루 잘라내야 했다. 나무를 자르기 위한 조촐한 예식에 참석해 달라는 초대장을 받았다.

학교에 도착했을 때, 막 예식이 시작됐고 자르려는 오래되고 거대한 나무 밑에는 들꽃으로 만든 화관이 놓여 있었다. 타임캡슐에 동전과 그날 날짜의 신문, 여러 사연을 적은 편지와 동으로 만든 동물인형과 연필들도 들어 있었다. 나무 앞에선 현악기와 타악기들이 연주되면서 전통 춤이 시작됐고 조촐한 예식 끝에 ‘환경 살리기’를 주제로 작곡된 노래들을 참석한 모든 이들이 함께 불렀다. 현재 이 학교는 생태학에 관심이 있는 이들은 물론 일반인들의 생태학 실습장소 및 체험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마구 잘려 나가고 파헤쳐지는 우리 강산을 본다. 인간의 편리를 위해 산이 사라지고 도로가 들어서고 나무들이 잘려 나간다.

이번 여름에 커다란 수해도 천재가 아닌 인재로 보아야 할 것이다. 마구 잘려나간 나무들, 계획되지 않고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도로와 시설물들, 흘러야 할 물길을 제대로 흐르지 못하게 하고 길이 아닌 곳에 길을 만드는 일들이 이런 인재를 발생시킨 요인이다.

병원이란 거대 조직도 마찬가지란 생각이다. 병원 입구에는 “병을 치유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라는 모토를 걸고 환자에게 좀 더 편안하고 인간 중심의 의료, 전인치료를 목표로 한다. 그런데도 전문 기술과 성과에 치중돼 환자중심이 아닌 업무중심 시스템으로 흐르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한다.

신선하고, 훈훈한 환경과 자연 친화적인 병원, 고객이 중심이 되는 병원으로 한그루의 나무를 돌보듯 사람 중심이 돼야 하지 않을까. 병원의 공기가 청정한 자연의 공기로, 병원의 냄새는 소독약 냄새가 아니라 꽃향기나 초록의 나뭇잎 향기가 퍼져 나가길 잠시 꿈꿔 본다.

/차영미 가톨릭의대 성빈센트병원장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