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이나 권력자 주변에는 알랑거리는 아첨꾼들이 모여들기 마련이다. 그래서 어쨌든 한 나라의 최고 권력자라고 할 수 있는 대통령 주변에도 아첨꾼들이 모여 드는 건 당연하다.
우리나라 어느 대통령이 공식석상에서 방귀를 뀌었는데 어느 장관이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라고 말했던 게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 화제의 진위여부는 알 수 없다. 화제의 그 장관은 능청맞고 아첨 잘하는 인물로 소문이 나있어 그런 우스갯소리가 만들어 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절대 권력자, 또는 최고 권력자 주변에는 언제나 별의별 소문들이 많겠지만 이중에는 조작된 소문들도 많다는 점을 우리도 알고 있다. 다만 궁금하다고 할까. 흥미 있는 건 그때 대통령은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하는 점이다.
누군가 너무나 뻔히 드러나게 아첨을 해왔을 때 어떻게 대할 것인가? 너무나 뻔한, 그러니까 서투른 아첨에 넘어가는 건 더불어 속물이 되는 것 같아 불쾌한 표정을 지을 수 있다. 그러면 아첨한 상대가 불쌍해진다. 자신은 속물을 면할지 모르지만 상대의 속물성을 규탄하는 게 돼 분위기를 난처하게 만든다. 그런 것까지 다 고려해 내키지 않지만 좋아하는 표정을 짓는다면 대단한 인생수업을 받은 큰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첨을 좋아한다고 할 수 있고 추켜세우는 아첨이야말로 동서고금을 통해 인류 공통의 기호품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아첨을 하는 건 속물근성의 표현으로 볼 수 있지만 동시에 최고의 처세술이라고도 볼 수 있다.
셰익스피어의 ‘줄리어스 시저’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인간을 사로 잡는데는 추켜 세우는 게 제일이야. 만약 나는 추켜 세우는 아첨을 무엇보다 싫어 한다고 말하면 상대는 ‘맞습니다. 당신은 아첨을 싫어합니다’라고 대답하거든. 그래서 당신이 좋아한다면 그야말로 아첨에 넘어간 결과가 되는거지.”
여러말 하지 않고 상대방에게 맞장구만 치고 있어도 훌륭한 아첨이 된다. 그러나 아첨이란 결국 말로 이뤄진다. 우리말에 ‘말로만 생색을 낸다’는 표현이 있다. 말이란 돈이 들지 않는 공수표인만큼 공짜로 생색을 내는 게 추켜세우고 아첨하는 행위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좋은 게 좋은 게 아니냐는 식으로 모두가 서로를 추켜 세우고 아첨하는 사회에 화합된 분위기가 조성되는 게 아닐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요즘 우리 정치판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적당히 넘어가지 않고 뭔가 엄격하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고 자기만, 또는 자기들만 잘났다는 식으로 독선적이라는 점에서 부정적이다.
자기들 파벌 내부에서만 아첨과 아부를 일삼을 게 아니라 그 아첨과 아부를 상대에게도 확대하는 게 어떨까. 물론 그것이 상대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와 혼돈돼선 안된다. 인간적인 평가나 능력에 대한 평가와 치켜 세우는 아첨과는 별도의 것이다.
대통령과 정치판, 치켜세우는 아첨과 아부의 인간관계, 역학관계 등은 단순한 처세술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된다.
/김 정 옥 연출가·예술원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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