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현명한 국민

장금석 인천연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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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는 생존 앞에 무력했다? 지난 5·31지방선거 결과를 두고 한 신문에 실렸던 글의 내용중 일부이다. 분단에 기생한 이념적인 강요와 무력을 앞세웠던 독재의 비상식이 끝나고 87년 우리는 민주주의를 맞이했다. 이른바 87년체제가 시작된 것이다. 대단히 제한적일지라도 긴 독재의 어둠을 끝내고 맞이하는 빛이었기에 그것은 우리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절차적인 민주주의는 그렇게 20년 가까이를 지나오며 확대됐다.

그러면 새로운 시대가 추구하는 시대적인 가치는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고 큰 나라와 작은 나라가 대등하게 협력하며 공존적인 가치에 기초해 인류가 생산한 부(富)를 함께 공유하는 사회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권력과 부를 가진 자들이 유포한 중산층 의식에 사로잡혔던 민중들이 IMF 이후 집단의 최면에서 깨어났다. 투기자본은 FTA(자유무역협정)로 이 땅의 금융과 의료, 교육, 농업 등을 가리지 않고 야수의 발톱을 드러내고 있다. GDP의 70% 이상을 상품무역에서 얻고 있는 우리 경제 실정을 앞세워 아수라(阿修羅)식의 공세를 취하는 자본의 논리 앞에 대다수 민중들의 FTA반대 논리는 대단히 빈약하다. 이들은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 10년으로 황폐화된 멕시코 경제는 페소화의 가치폭락으로 인한 것이지 결코 자유무역협정 때문만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들에겐 거리를 뒤덮은 빈민과 노점상들은 보이지 않는다. 오직 늘어난 생산량과 수출만 보일뿐이다. 반면 이스라엘의 무차별적인 레바논 공습은 자위를 위한 정당한 행동이며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독재로부터 이라크 민중을 해방시키기 위한 전쟁으로 왜곡된다.

온 나라가 큰물로 시름에 젖어 있다. 매년 반복적이지만 그 슬픔과 충격은 이상하리만치 내성화되지 않는다. 그러나 한·미 FTA협상이 몰고 올 피해는 결코 태풍이나 장마에 비할 바가 아니다. 한마디로 재앙이다. 얼마 전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대다수 국민은 정부의 한·미 FTA 협상속도에 불만과 함께 협상문 공개를 바라고 있다. 그리고 과반수 이상은 한국이 불리한 협상임을 이해하고 있었다. 참으로 현명한 국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12일 서울 시청 앞. 장대비가 내리는 가운데 국민은 새로운 시대의 가치와 자신의 생존을 위한 실천을 일치시키고 있었다.

/장금석 인천연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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