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문화헌장이 선포됐다. 문화헌장 전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문화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의 기초이다. 문화는 시민 개개인의 삶의 다양한 목표와 염원들을 실현해 나갈 자유로운 활동의 터전이고 공동체를 묶어 주는 공감과 정체성의 바탕이며 사회가 추구해야할 가치, 의미, 아름다움 등의 원천이다. 문화는 정치·경제·사회 등 모든 영역에서 인간의 품위와 생명의 존엄을 모든 가치의 중심에 두는 사회를 열게 하며 시민 생활의 질을 높여 모든 이가 삶의 즐거움과 행복을 누릴 수 있게 한다….”
이번에 선포된 문화헌장을 길게 소개한 이유는 우리의 문화적 권리가 중요함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이 살아야 할, 또는 살아 있을 권리가 있다. 모든 인간의 보편적 권리다. 인간의 기본적 권리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모든 인간들은 잘 살 수 있는 권리가 있다. 품위있고 아름답게 살 권리도 있다. 좀 비약해 말하자면 책을 볼 권리도 있으며 음악을 듣고 그림을 감상하고 이를 통해 현실과 다른 상상의 세상을 꿈 꿀 수 있는 권리도 있다.
언젠가 KTF라는 통신회사가 시민단체 대표들을 점심에 초대해 기업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이 기업은 기업의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취지에서 여러가지 사업을 벌이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그런 사업중 하나가 소년소녀가장 돕기라고 했다. 주로 생활하는데 도움이 돼라고 의식주에 대해 지원해주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누군가 소년소녀가장들에게도 먹고 사는 문제만이 아니라 친구들과, 또는 아는 사람들과의 통신도 중요하니 이 기업이 가능하면 통신기기도 지원해줄 것을 제안했다. 필자는 이 제안을 적극 지지했다. 이때 의식주는 생존에 필요한 당연한 기본권이지만 다른 친구들과 통신을 할 수 있는 통신권도 이젠 인간들의 삶에 필요한 문화적 기본권이기 때문이다.
필자의 화실이 있는 가평의 한 마을은 지금 한참 전원주택업자들과 펜션업자들이 동네 경관을 망가트리고 있다. 거기다 이 난을 통해서도 소개했지만 이 외통 동네에 경기도가 마을을 관통하는 도로를 개설할 예정이어서 앞으로 또 한번 마을이 파괴될 위험에 처해있다. 그런데 더 한심한 건 이같은 경관을 포함한 마을의 변화에 대해 대부분의 마을 주민들이 이상한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거기에 오래부터 살아온 주민들에게 답답해 물어보면 대부분 이렇게 대답한다. “관이 (허가를 받아) 하는 일인데….” 대부분의 주민들은 생업에 바빠서긴 하지만 마을과 주민 자신의 문화권인 경관의 가치와 좀 더 나은 삶의 질에 대해 나 몰라라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 사회에 양극화가 진행되면서 생존권마저 위협받는 절대 빈곤층이 갈수록 늘고 있지만 생활이 복잡해지면서 인간으로서 기본적으로 갖춰야할 문화적 조건들도 늘고 있다. 위에서 보듯 아무리 빈곤층이라도 학교나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통신할 수 있고 최소한의 정보가 있어야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무분별하게 개발돼 경관이 파괴된 지역에 우리 삶을 그대로 방치해서도 안된다. 우리 사회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압축적 근대화과정을 거쳐 고도의 경제성장으로 열 몇번째 경제대국에 속한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문화지수나 삶의 질 지수는 아마도 일산화탄소를 기준으로 한 환경지수 136위와 같이 거의 꼴찌에 가까운 순위일 것이다.
이제라도 우리의 삶을 품위 있고 아름답게 영위한다는 게 사치가 아니라 당연한 인간의 기본적 권리란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것을 우리 사회에 제안한 게 다름 아닌 이번에 선포된 문화헌장이다.
/김 정 헌 공주대 교수·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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