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 탄생 100주년 특별전’. 딱 2주간의 전시에 보기 드문 명품전이라 바쁜 중에도 어렵사리 틈을 냈다. 간신히 미술관을 찾아 입구에 서자 소문대로 사람이 넘쳤다. 길게 늘어선 줄에 마음이 먼저 둥둥거렸다. 특별 나들이에 간송의 비탈길조차 흐뭇하다.
입장을 기다리는 동안 신문에서 본 몇몇 대목이 스쳤다. 필자들은 대부분 간송 전형필 선생에 대한 예를 갖추며 문화사랑의 폭과 넓이를 기렸다. 그 많은 유물에 바친 시간이 새삼 귀하고 아름답게 새겨졌다. 그 분이 아니었으면 얼마나 많은 우리 문화재가 엉뚱한 곳에서 통탄하고 있을까. 그래서 간송 덕에 만나는 문화유물은 유물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런 마음으로 그 분의 혼이 담긴 명품들을 깊이 쓰다듬었다.
간송은 우리 문화사랑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잘 보여준 분이다. 무엇보다 어르신들이 전시회에 몰려나온 데서 그 힘을 다시 보게 한다. 연세 지긋한 어른들이 신윤복의 고혹적인 ‘미인도’ 앞에서 넋을 놓거나 이명욱의 텁텁한 ‘어초문답’ 앞에서 연신 무릎을 치는가 하면, 우아하기 짝이 없는 ‘청자상감운학매병문’이나 앙증맞은 ‘청자압형연적’ 등의 앞에서는 눈이 부셔 아예 붙박이가 되는 것이었다. 그뿐인가, 아이들까지 몰려오니 그야말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우리의 국보급 문화재에 다들 흠뻑 취했다. 찬탄의 표정에 은근히 묻어나오는 자긍 또한 서로가 뿌듯이 공유한 느꺼움이다.
욕심 같아서는 쉬었다 다시 들어가 보고 또 보고 싶은 마음 간절했다. 그렇지만 더위에 지친 데다 사람이 계속 몰려와 그건 좀 곤란했다. 유물들에 대한 걱정도 발길을 돌리게 했다. 비좁은 공간에 사람이 넘치니 자연 염려가 앞서는 것이었다. 그 와중에 떠오른 게 ‘불친절한 전시’라거나, ‘국보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는 촌평들이었다. 물론 ‘1시간 이상씩 늘어선 인파’에 비해 전시 방식이나 공간 등이 미흡해서 나온 애정 어린 비판이다. 전시 문화를 전반적으로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는 말에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평소에 만날 수 없는 귀한 문화재와 그에 상응하는 관심에는 못 미치는 ‘대접’ 때문이다.
간송 탄생 100주년에 선생 댁에서 하는 전시라는 의미가 크긴 하다. 일생 우리의 문화재를 모은 산실에서 유물을 만나는 일은 그 뜰의 나무들과 더불어 그 분의 운치나 체취를 느끼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경험이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전시 방식만 아니라 전시 기간도 너무 짧기 때문이다. 큰 맘 먹고 다른 일정 미루며 간 전시장에서 사람에 밀려다니는 것쯤이야 당연한 품일 수 있다. 그렇지만 아무리 좋은 전시라도 그에 따른 대가가 너무 크면 그건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아무튼 간송은 어르신들을 전시장으로 불러냈다. 그런 문화사랑이 어르신들께 제공한 시간 여행은 특별해 보였다. 묵은 것의 아름다움을 푹 익혀 볼 줄 아는 분들이 전시장을 오래 거닐었다. 나이 들수록 우리 것의 가치를 새기는 건 지나온 시간을 알아보기 때문일까. 그런 시간 나들이의 무늬가 문화 나들이에 상감되는 오후, 그득히 품은 소회에 문득 눈물이 고였다. 미술관 앞에서 독도 지키기 서명을 받는 사람들 곁을 지날 때도 그러했다. 간송의 문화사랑에 독도의 위용이 거듭 겹치는 귀로는 그윽하고도 길었다.
/정 수 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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