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대한민국~ 오! 간판공화국

김 정 헌 화가·공주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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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백제 무령왕이 탄생했다는 일본 사가현 가카라시마라는 조그만 섬엘 다녀온 일이 있다. 일본 동경에 한두번 간 적이 있지만 이렇게 시골로 가보긴 처음이다. 한시간 이상을 버스로 가는 길에 여러가지 일본 농촌풍경을 잘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 도로와 비교하면 왕복 2차선의 좁은 국도였지만 농촌 들녘이 우거진 숲과 잘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서울에 집을 두고 공주의 직장과 가평의 화실 등을 돌아 다녀 시골풍경을 많이 본 필자같은 사람 눈에 일본 농촌은 우리와 너무 달라 보였다. 우선 시각적 공해물이 눈에 띄지 않았다. 필자 눈에 그렇게도 익숙했던 그 간판들과 선전 현수막 등 온갖 선전물들이 일본의 국도 옆에는 보이지 않았다.

필자가 왜 얼핏 본 일본의 풍경을 얘기하는지 대부분의 독자들은 짐작하리라 믿는다. 제목 그대로 우리나라는 간판공화국이다. 온 나라가 간판과 상업적 선전물 등으로 덮여 있다. 점점 그 도가 심해지고 있다. 어떤 기준이나 규칙도 없어 보인다. 대도시의 부도심으로 갈수록, 도시의 근교로 갈수록, 수도권의 새로운 개발지역으로 갈수록 더 심해지고 있다. 그것을 매일 보아야 하는 사람들은 눈곱만큼도 생각을 해주지 않거니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막가파 수준의 간판과 현수막 등도 수두룩하다.

남이 내걸고 자기 영업을 선전하는데 나라고 가만 있을 수 있느냐다. 옆집에서 5개를 내걸면 나는 하나를 더해 6개를 내걸어야 직성이 풀린다. 남이 인도를 침범하면 나는 차도를 점거한다는 식이다. 한때 음식점들마다 TV의 ‘맛자랑 멋자랑’에 나온 걸 그 집의 자랑거리로 크게 내다 붙인 걸 다들 기억할 것이다. 이제는 전국의 거의 모든 음식점들이 ‘맛자랑 멋자랑’을 내걸지 않은 집이 없게 됐지만 심지어 어떤 집들은 길거리에 세워 논 입간판에 ‘××× 맛자랑 멋자랑에 나오지 않은 집’이라고 써 붙여 놓은 집도 생겼다. 너도 나도 내세우다 보니 나온 집이나 나오지 않은 집이나 무슨 차별이 있겠느냐하는 그집 주인의 나름대로의 배포(?)가 실소를 머금게 한다.

특히 필자는 도시 근교를 자주 지나게 되는데 그때마다 간판으로 요란하게 뒤덮인 건물들을 어쩔 수 없이 만나게 된다. 온갖 간판들과 현수막들이 건물을 완전히 포장하고 있다. 상업적 선전 간판들과 현수막은 그렇다 치더라도 왜 그렇게 우리나라 길거리엔 관제 안내 표지판들이 많은가. 정말 정신이 혼란스럽고 괴이한 간판이나 선전물, 안내표지판 등을 만날 때 마다 운전이 잘 안될 지경이다. 어떻게 이처럼 자기선전과 포장이 극심할 수가 있는가. 거의 간판 전쟁이라고 해야 할 지경이다. 어떤 건축가는 간판으로 요란스럽게 뒤덮인 이런 건물들을 야유하면서 간판에 대해 이렇게 정의를 내린 적이 있다. “간판은 건물의 마감재다.”

논객인 강준만이 간판문제를 우리 사회의 생존권차원의 ‘주목투쟁’으로 기술한 것에 필자는 동의한다. 그는 이 주목투쟁의 현상을 우리 사회가 서울대 간판처럼 서열중심의 사회심리적인 요소가 깔려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질곡과 결핍의 시대를 살아온 한국인들은 본능적으로 불확실성에 대한 공포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 불확실성의 제거의 표시로 간판을 더 많이, 더 요란스럽게 만들어 붙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유가 어디에 있든 간판으로 뒤덮여 우리의 눈을 어지럽히는 일을 더 이상 방치해선 안되겠다. 우리의 아름다운 산하와 경관은 우리의 공공재다. 아무리 간판이 생존(?)과 관련된 주목투쟁이라고 하더라도 공공재를 무너뜨리고 파괴하는 행위로 우리 삶의 질을 떨어 뜨려서야 되겠는가? 이럴 때 지방정부는 우리의 공공공간을 위해 바로 그 공권력을 행사해야 한다.

/김 정 헌 화가·공주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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