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칠십을 넘었으니 당연히 노인처럼 살아야 하는데 아직도 청년같은 기분으로 살려고 하니 갈등이 있게 마련이다. 거울을 들여다 보면 무엇보다 머리칼의 숱이 적어져 중년을 넘어선 노인의 모습이 거기 있다. 모자를 쓰면 10년은 젊어진다고 해서 될 수 있는대로 모자를 쓰고 다니지만 실내에서는 모자를 벗어야 하니 어쩌랴…. 그렇다고 가발은 속임수를 쓰는 것 같아 쓰기는 싫고 그래서 가발 같은 모자를 만들어 보라고 많은 디자이너에게 제안해 봤지만 성과가 없다.
거울을 보고 생각하다 문득 수염을 길러보면 어떤가 하는 생각을 했다. 위쪽 머리 숱이 적어 훤해졌으니 아래쪽에 수염을 기르면 보강이 되고 조화가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됐고, 무력한 노인의 얼굴에게 뭔가 권위와 긴장감을 되찾게 해 줄지도 모른다고 여겨진 것이다. 며칠간 면도를 하지 않고 수염을 기르다가 턱밑에만 면도를 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아내가 질색을 했다. “흉측해요. 다 깎아요!” 아내는 수염 기른 남자를 보면 비위가 상한다는 것이다. 어쩐지 불결해 보인다는 것이다.
아내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수염을 기르지 못하고 다시 깎고 말았는데 아내의 이러한 혐오심은 도대체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결코 누그러질 것 같지 않은 아내의 강력한 수염에 대한 반응을 보면서 나는 70년대 ‘헤어’(머리칼)란 뮤지컬을 생각했다. ‘헤어’는 70년대 베트남 전쟁이 한창일 때 반전적인 젊은이와 히피족 등을 다룬 작품으로 세계적으로 장발족을 유행시킨 작품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머리칼, 아름답게 길러라. 멋있게 흩날려라. 언제나 어디서나, 너 나 할 것 없이 헤어, 헤어, 헤어…. 바람에 흩날리고 나뭇가지에 휘감기는 비단 같은 머리칼, 햇살에 빛나는 풀잎처럼 반짝이는 머리칼. 예수님도 기른 머리칼, 마리아가 사랑했던 예수님의 긴 머리 아름답게, 멋있게 자라게 하라.”
이런 노래를 들을 때 젊은이들은 누구나 머리를 기르고 싶어했다. 그러나 긴 머리에 대한 혐오를 갖는 사람의 세력도 만만찮았다. 그들은 “지저분한 머리칼 깨끗이 깎아 세계를 보다 청결하게 만들자”고 외쳤다. 60년대와 70년대 한국의 경제부흥을 주도한 박정희 대통령. 그러나 그는 정치적으로 독재자였고 새마을운동을 제창했다. 모두가 열심히 일해 잘 살아보자는 것이다. 그러한 그가 장발족을 좋아할 이유가 없다. 어떤 장군은 머리를 길렀다 옷을 벗었고 거리에서도 장발족들을 단속했다. 필자가 연출작업을 해온 극단 자유에서 70년대와 80년대 걸쳐 두 번 공연을 하려고 했으나 번번이 작품심의에 걸려 포기해야만 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는 일이지만 그러한 시대였다. 그 시대에 헌법재판소가 있었다면 통행금지시간, 장발단속, 영화나 연극의 검열 등을 다 헌법재판소에 제소를 할 수 있을텐데 말이다.
여자들의 치마 길이만 그 시대의 유행이 아니라 머리칼 길이도 유행이 있는 것 같다. 그건 그렇고 필자가 수염을 기르는 건 아내 검열에 걸려 불발로 끝났으니 헌법재판소도 아내의 독재를 막지는 못하나 보다. ‘헤어’ 대신에 ‘수염’이란 뮤지컬을 만들어 저항해 보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김 정 옥
얼굴박물관장·예술원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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