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를 한번 빙 둘러보면 무엇하나도 남의 손길을 거치지 않은 게 없다. 가구, 시계, 책 그리고 먹을 것, 입을 것 등등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없다면 우리는 잠시도 생활을 지탱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렇게 사람은 고립해 홀로 살 수 없고 다른 사람들과 공동생활을 하면서 살아 갈 수밖에 없는 존재란 뜻에서 하이데거는 “인간의 존재는 다른 사람과의 공존에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러한 공동생활을 슬기롭게 영위하려면 무엇보다 대화가 중요하다. 인간은 대화를 통해 공감하고 이해한다. 대화가 잘 이뤄지기 위해선 남의 말이나 의견을 귀담아 새겨 듣고 이해하고 옳은 점이 있다면 이를 받아들일 용의가 있어야 하며 남의 생각이나 주장이 나의 그것과 다를 수도 있다는 전제를 토대로 자기의 견해를 이해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대화에서 가장 중요한 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소재나 근거가 충분하고 명백하게 마련돼야 한다는 점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한해 전인 선조 24년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온 황윤길과 김성일의 귀국보고에는 상반된 견해가 개진됐었다. 황윤길은 반드시 왜의 침범이 있을 것이라고 했고 김성일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그리하여 당시 조정은 병화가 있겠다·없겠다 등으로 나뉘어 극명하게 다퉜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당시 그렇게 판단하게 된 선명하고 충분한 근거를 알지 못한다. 요즘 지도층을 자처하는 인사들이 대화가 중요하다고 하면서 막상 주장하는 바를 들어보면 합리·이성적 논거는 찾아 볼 수 없고 현란한 언어로 상대를 공격하거나 여론을 부추기는데만 급급할 뿐이다. 그러다 보니 국가의 명운이 걸린 중요한 대사에도 차분한 대화의 장은 커녕 일방적인 자기 주장만 되풀이하면서 편을 갈라 대립하다 결국 강행, 투쟁 일변도의 상황으로 치닫고 만다. 그래서 쟁점이 되는 내용이 무엇인지 보통사람들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가상적으로 김성일과 황윤길이 오늘날 대화의 광장인 세미나에 초청받아 당시 문제에 대해 주제발표를 한다면 대화는 어떻게 진전됐을까? 훌륭한 대화가 진전될만큼 충분한 근거가 갖춰져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세계화를 지향하는 현대사회는 거친 파도를 헤치고 가는 커다란 배와 같다. 우리는 한배를 타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갈 수 없다. 정치·경제 지도자가 군림하던 과거와는 달리 여러 분야 지도자들이 두터운 지도층을 형성하고 있는 오늘날의 다양화된 사회에선 충분한 논거를 갖춘 합리적인 대화의 장을 열어야 한다.
/임 종 호 수원보호관찰소장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