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환상에 빠졌던 적이 있다. 컴퓨터가 모든 것을 다 알아 척척 해결해 주고 컴퓨터 때문에 온 세상이 금방 천국이라도 된 것 같은 착각, 반면 컴맹으로 남아 있으면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공포가 엄습하기도 했다. 컴퓨터가 내 목을 조르는 악몽에 시달리기도 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컴퓨터를 배워 써보니 그런 생각들이 터무니 없는 착각이었음을 알게 됐다. 물론 덕분에 컴퓨터의 환상에서 깨어났고 컴맹 공포에서도 벗어났지만, 그래서 더 행복해졌느냐 하면 천만의 말씀이다. 전혀 그렇지 않다. 컴퓨터 시대가 되면 엄청 편리해 지고 종이도 쓸 일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컴퓨터가 그렇게 유혹적으로 속삭였었다. 종이 없는 상쾌한 세상, 종이를 만들기 위해 나무를 베지 않아도 되는 세상, 그래서 공기는 맑고 지구가 건강한 세상,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정말 그렇게 믿었다. 순진하게도…. 그러나 웬걸, 컴퓨터를 쓰게 되니 골치가 훨씬 더 아파지고 마음은 각박해져 신경질적이 되고 종이 사용도 줄기는커녕 오히려 더 많아지는 게 아닌가. 물론 편리한 점들도 많다.
그러나 그 약간의 편리함을 얻기 위해 인간적인 면을 왕창 빼앗기고 말았다. 사람 냄새도 없어져 버렸다. 예를 들어 펜으로 쓰는 글씨에서 느끼는 정겨움이나 개성 등은 사라져 버렸다. 이상한 외계어가 판을 치는, 살벌하고 뻑뻑한 세상이 됐다. 사람들의 마음과 정신도 그렇게 일그러지고 토막토막 부서지고 있다. 황량하다.
컴퓨터 앞에 앉아 열심히 일하는 사람의 표정을 유심히 살펴보면 하나같이 화가 난 표정이다. 마치 싸우는 것 같다. 말을 걸면 잔뜩 짜증스러운 대답만 돌아온다. 정겨운 대답을 기대할 수 없다. 구조적으로 도무지 여유를 가질 수 없다. 기계의 노예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컴퓨터 시대가 됐으니 신앙도 컴퓨터 신앙으로 변해야 한다고 그런다. 시대의 추세에 맞춰 인터넷 선교나 온라인 교회 같은 것을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글쎄, 컴퓨터를 통해 예배를 보고 기도를 한다? 헌금은 자동 이체 또는 ARS? 과연 그게 가능할까. 하나님과 채팅하듯 그렇게 하는 것을 신앙생활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신앙을 성숙시키는 방법의 하나로 성경 쓰기가 있다. 한 글자 한 구절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옮겨 쓰면서 성경에 배여 있는 사랑을 느끼며 배우는 신앙 수련이다. 이것을 컴퓨터로 하면 어떻게 될까. 성경 베껴 치기나 옮겨 때리기가 될텐데, 그렇게 하면서 기도하는 마음이 될 수 있을까. 대부분 누가 빨리 치나 경쟁하는 것 같던데….
참 신앙은 편한 길 찾기가 아니다. 요령 부리기도 아니다.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의 이익’이란 경제원리가 통하지 않는 곳이 사람의 마음 밭과 신앙임을 잊지 말자.
/권 영 삼 수원 영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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