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졸업식에 대한 기억

이번 졸업시즌에 우연히 졸업식장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누구나 졸업에 대한 아련한 추억이 있듯 필자 역시 가슴 한 구석, 빛바랜 앨범처럼 남아 있는 친구의 모습이 졸업식과 맞닿아 있다. 중학교를 졸업하던 80년대 중반 3년동안 같은 반을 하며 단짝으로 지내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가 초등학교 다닐 때 아버지는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가고 어머니는 4형제 생계를 위해 시장에서 날품을 팔았다. 친구는 자신의 등록금이라도 마련, 어머니의 고생을 덜어 드리기 위해 석간신문을 돌렸다.

수업이 끝나면 곧 바로 밤늦게 귀가하는 어머니를 대신해 동생들을 챙기고 신문을 배달하는 등 바쁜 일과의 연속이었지만 학교에선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늘 웃음을 선사하며 힘들다는 내색 한 번 하지 않는 착한 친구였다. 주말 산동네 다섯식구가 살고 있는 골방, 친구 집에 찾아가면 그만 그만한 그 친구의 동생들이 토끼눈을 하고 달려와 반겨주고는 했다.

오순도순 모여 앉아 친구가 끓여 주는 라면을 동생들과 즐겁게 나눠 먹던 기억은 지금도 불어터진 라면처럼 눈망울을 조여 온다. 졸업식 날 친구와 졸업식이 끝나면 동생들을 데리고 자장면을 먹으러 가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그날 친구를 졸업식장에서 볼 수 없었다. 어머니가 몸이 많이 아파 일을 쉬게 되자 가정형편 때문에 진학을 포기해야 했던 것이다. 친구가 없는 졸업식은 그야말로 우울, 그 자체였다. 얼마 후 담임선생님 부탁으로 졸업장과 3년 개근상장을 주려고 친구의 집을 방문했을 때 친구는 벌써 지방에 사는 친척집으로 이사를 가고 없었다.

20년 후 필자가 다시 찾은 중학교 졸업식장은 사뭇 달라져 있었다. 항간에는 학생들이 계란을 던지고 밀가루를 뒤집어쓰고 교복을 찢는 것을 ‘난동’이란 격한 표현을 쓰며 졸업식 풍토를 교육 정책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기성세대의 우려와 달리 졸업식장에는 눈물은 없어졌지만 즐거움과 환한 웃음만 있었다. 학생들의 해맑고 행복한 모습 속에서 당시 운동장 어딘가에 숨어 졸업식을 자축하며 바라 보았을 친구에 대한 우울한 기분도 사라졌다. 시대와 세대가 달라져도 여전히 졸업식장 주인공은 졸업생들이고 학생들마다 나름대로 추억을 간직할 권리가 있으므로 기성세대 잣대로 학생들의 졸업문화를 평가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권 성 훈 시인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