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남쪽 지방을 다녀왔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남녘의 산하는 어느새 푸르름이 조금씩 묻어나고 있었다. 부지런한 보리 싹이 제일 먼저 대지를 뚫고 솟구쳤고, 이에 질세라 산색도 눈에 띄게 바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얼음이 풀려 한가하게 흐르는 개울에는 오리 떼들이 포만감을 즐기며 떠다니고 있었다.
공항에 내려 차로 달리는 들판은 봄이 더욱 완연했다. 누런 잔디 밑으로 연녹색의 새잎이 수줍게 고개를 내미는 곳도 있었고,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나뭇가지들은 조심스럽게 작은 움들을 틔워내고 있었다.
봄은 참으로 경외(敬畏)롭다. 잠시 멈추어 서서 한 여류시인이 노래한 ‘겨우내 뿌리에서 일어난 일은 얼마나 더 눈물겨운가’를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흙과 검푸라기와 빙설 밑에서도 청동의 못들처럼 꼿꼿하게 모가지를 세우고 견딘 진실로 눈물나는 향일성의 생명의 신앙’으로 다가오는 봄을 온몸으로 느껴 보았다. 그러나 목적지에 도착해서 만나본 사람들의 마음은 아직 겨울에 머물러 있었다. 먹고 살기가 각박해서 봄이 와도 봄 같지 않은 것이리라. (春來不似春)
언젠가 김대중 대통령이 우리 경제를 빗대어 이제 아랫목은 따뜻해졌으니 머지않아 윗목도 훈기가 돌 것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한 일이 있다. 그리고 오륙년이 지난 지금 노무현 대통령은 양극화를 이야기 한다. 아랫목은 뜨거운데 윗목은 더 냉골이 되어버려 상황이 더 나빠졌다는 것이다. 한쪽은 여름으로 건너뛰었고 다른 한쪽은 여전히 겨울이니 우리 국민들이 봄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정치가 국민들을 두루 잘살게 하려고 있는 것인데 상황이 이런데도 필자를 포함해 정치하는 사람들은 남의 탓만 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필자는 남다른 희망을 갖는다. 봄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은 겨울을 견디어 낸 힘, 덕분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겨울을 견디어 낸 자연에게 생명의 부활이라는 봄을 선물하시는 신(神)이시기에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스스로 내일을 준비해 온 우리 국민 모두에게 경제회생이라는 선물을 주실 것으로 확신한다.
마침 기상청은 올 봄 꽃 소식이 작년보다 일주일 먼저 올 것으로 전하고 있다.
머지않아 서귀포에서부터 개나리 진달래가 필 것이고, 그로부터 보름 내에 우리가 사는 경기도에도 꽃들이 피어 봄이 왔음을 알리게 될 것이다. 하루 100리 씩 빠른 속도로 북상하는 봄소식에 실려 우리 경제에도 꽃피는 봄이 오기를 진심으로 기대해 본다.
/정 진 섭 국회의원 (한나라당·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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