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역사를 배울까? 우리의 뿌리를 알고 싶어서, 아니면 선조들이 어떻게 살아왔나 궁금해서 일까. 물론 그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그보다 역사 속에서 교훈을 얻기 위함이 아닐까 생각된다.
오늘은 조선 제16대 임금 인조(仁祖)가 겪은 병자호란에서 교훈을 얻어 보고자 한다. 1636년 신흥 국가인 후금(後金)의 누루하치는 명나라와의 전쟁에 필요한 말과 황금, 그리고 군사 3만명을 조선에 요구했고 신하들은 자파의 이익에 따라 명나라와 후금을 놓고 저울질하다 결국은 망해 가는 명을 선택하므로 후금의 침략을 받는다. 인조는 지금의 성남에 위치한 남한산성으로 피신했다 청(이때 후금은 국호를 청이라고 했음)나라에 항복하고 강화조약을 맺는다. 내용은 군신의 예를 지키고 명나라와의 관계를 끊으며 조선 왕의 장자와 둘째 아들을 인질로 내어 놓을 것 등이었다.
인조는 조약에 따라 누루하치에게 군신의 예로 절을 올리게 되는데 돌계단 한칸씩 올라갈 때 마다 돌계단에 머리 부딪치는 소리가 수어장대에 앉아있는 누루하치에게 들리도록 절할 것을 요구, 인조의 이마에선 출혈이 낭자했고 이런 모습을 지켜보는 신하들은 통곡하게 된다. 궁궐로 돌아온 인조는 신하들에게 당파싸움을 중지하고 국력 배양에 힘써 줄 것을 당부하며 이르길, ‘생이지지’(生而之知:태어나면서부터 깨닫게 되는 자는 하늘이 내린 자), ‘학이지지’(學而之知:배워 깨닫는 자는 현명한 사람), ‘곤이지지’(困而之知:어려움을 겪고 깨닫게 되면 다행), ‘곤이불학’(困而不學:어려움을 겪고 난 후에도 깨닫지 못한 사람은 어리석어 망함)등이다. 이후에도 당파 싸움은 계속됐고 급기야는 왜국에 나라를 빼앗기는 수모를 겪었다.
80년대 UR협상이 본격화되면서 농산물 자유무역이 눈앞으로 다가 오기 시작하자 일본은 2년동안 벼 수매가격을 동결하고 10년동안은 수매가격을 낮춰 국제시장과의 쌀값 차이를 줄여 나가면서 농가소득 보전책으로 직불제를 도입하고 있을 때, 우리는 수매값을 계속 올려주는 선심성 정책으로 오히려 국제시장과의 쌀값 차이를 더 크게 해 지금 그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 올해는 수입쌀이 국내시장에서 판매되는 원년이며 미국과의 FTA협상이 본격적으로 진행된다니 농업계로선 참으로 어려운 한해가 될 것 같다. 이러한 때일수록 농업의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대책이 마련돼 후손들에게 세계에 모범되는 튼튼한 농업의 기틀을 물려줄 수 있는 역사의 한해로 기록되길 바라마지 않는다.
/이 충 현 농촌진흥청 농촌지원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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