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자금과 자식들의 증여 문제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매우 죄송스럽습니다.” 지난 8일 삼성 이건희 회장은 삼성 X파일과 대선로비, 에버랜드 전환사채에 의한 불법 증여문제 등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했다. 사재를 털어 8천억원이란 거금을 사회에 헌납하겠다고도 했다. 뉴스를 보고 한마디로 기가 찼다. 언론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8천억원에 스포트라이트를 맞췄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운운하며 8천억원이란 돈의 규모에만 입을 모았다. 그러는 사이 우리 사회는 또 재벌에게 희롱당하고 있음에 분노마저 치밀어 올랐다.
자신들의 잘못된 행위에 대해 돈으로 무마하려는, “8천억원이란 돈을 사회에 헌납할테니 잘 봐 달라”는 식의 반성은 가식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자본의 총수답게 돈으로 해결하려는 방식은 당연했겠지만, 돈 이전에 반성의 자세가 우선됐어야 한다. 우리의 정서로 볼 때, 잘못이 있으면 책임자가 머리를 조아리고 사죄하는 게 맞다. 그러나 삼성 이건희 회장은 본인이 직접 나와 사과하는 것도 아니고 아랫사람 입을 통해 사과문을 낭독케 했다. 이건 예의가 아니다. 진실한 반성의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삼성 X파일과 전환사채 문제 등 자신들의 잘못을 사과하는 게 아니라 물의를 일으킨 사실에 대해 사과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현재 제기한 소송은 모두 취하하겠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범죄행위에 대해 일말의 사과나 반성이 아니라 삼성의 문제로 신경 쓰이게 해 죄송하다는 것이다. 이런 사과가 어디 있나.
더구나 그룹총수 일가의 잘못으로 인해 실추된 삼성의 이미지를 제고하기 위해 임직원들의 사회봉사 의무화를 내놓았다. 어려운 곳을 찾아 사회봉사를 한다는 건 의미있는 일이나 동원식 사회봉사가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겠는가. 직원들이 면피용 뭐라도 되는가.
국민들이 이건희 회장을 비판하는 건 그가 부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법을 우롱하고 국민을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뜻은 애꿎은 사재를 털 게 아니라, 남들 다 지키는 법을 같이 좀 지키라는 지적을 되새겨 보아야 한다.
기금 헌납이 이건희 회장 일가의 잘못을 덮어주는 면죄부가 되어선 안 된다. 그렇게 될 수도 없다. 돈의 힘으로 나라를 움직이려고 하는 그런 시대는 지났다. 이건희 회장이 진심으로 반성한다면 ‘돈’으로 하늘을 가리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유 진 수 인천참여자치연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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