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기브미 초콜릿에서 러브미 초콜릿

밸런타인데이를 맞아 제과회사와 대형 백화점 등이 앞다퉈 다양한 이벤트들을 펼치고 있는 것을 볼 때 서양에서부터 시작된 밸런타인데이가 국내에서 이미 하나의 통과의례적인 문화로 정착됐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자본주의 국가에서 밸런타인데이처럼 외래에서 유입된 전래문화와 고유의 전통문화가 적당히 어우러져 또 다른 특수한 다른 문화를 꽃피우고 있다. 이는 문화는 국가관과 관계없이 의사소통이 가능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정신의 산물이자 인류 공유물이란 점에서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다.

밸런타인데이 기원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269년 2월 14일 로마의 사제 밸런타인에서 유례를 찾고 있다. 당시 황제 클라디우스는 젊은 청년들을 군대로 끌어 들이고자 결혼금지령을 내렸다. 신부 밸런타인은 결혼금지령을 반대하고 서로 사랑하는 젊은이들을 결혼시켜준 죄로 순교하게 된다.

밸런타인은 순교 당시 간수의 딸에게 ‘Love from Valentine’이란 편지를 남겼는데 이를 계기로 밸런타인데이에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는 풍습이 생기면서 연인들의 날로 정해졌다.

이후 밸런타인데이는 각 나라마다 상술을 이용한 사랑이란 날개를 달고 돈, 꽃과 과일, 사탕과 초콜릿 등 선물을 주고받는 날로 인식되어졌다. 우리나라의 경우 밸런타인데이에 이어 3월14일 화이트데이, 4월14일 블랙데이, 11월11일 빼빼로데이 등의 계보가 생겨났다. 이를 통해 외래문화가 적당히 고유문화와 어우러져 특수한 다른 문화로 패러디되지만 거기에는 여지없이 초콜릿, 사탕, 자장면, 빼빼로 등 상술을 위시로 한 상품들이 사랑이란 이름으로 과대 포장됐다.

사실 우리나라의 본격적인 초콜릿의 보급은 한국전쟁 때로, 아이들이 전쟁통에서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미군을 따라다니며 “기브미 초콜릿”을 외쳤다. 이런 애절한 기억은 초콜릿이 구호품 이상의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주고 있다. 하지만 현재 밸런타인데이에 정작 사랑이란 내용은 없고 초콜릿이란 형식만 남아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젊은 연인들의 사랑을 위해 목숨을 바친 성 밸런타인의 정신을 생각한다면 밸런타인데이에 혈당 수치를 높이는 초콜릿보다는 용기와 신념을 줄 수 있는 달콤한 칭찬 한마디가 훨씬 상술로 피폐해진 인간정신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권 성 훈 시인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