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완물상지(玩物喪志)

설 연휴가 끝나기가 무섭게 5년을 넘게 살아온 15평 아파트에서 좀 더 넓은 아파트로 옮겼다. 가장 힘들었던 시간들을 보냈고 가장 기쁘고 행복한 시간들이 교차되던 공간이었다. 이사하려니 만감이 교차되면서 새삼 구석구석을 들여다 보게 됐다. 5년동안의 반복된 동작으로 생활에 필요한 동선은 무의식적으로 그릴 수 있었다. 하지만, 미처 한번도 눈길을 주지 못한 곳도 있었다.

요즘 이사야 대부분 포장이사가 기본이니 예전처럼 이사를 준비한다고 집을 발칵 뒤집을 일도 없다. 그래도 명색이 이사인데 손가락하나 까딱하지 않을 수 없어 5년동안 구석구석에 쌓인 먼지라도 털어낼 요량으로 들썩였었다. 서랍과 옷상자에는 언제 사들였는지도 모를 바지며 셔츠 등이 있었고 책장에는 읽지도 않은 책과 자료집들이 무질서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세제는 식탁과 싱크대 밑에서 그리고 수납장 안 등에서 다양한 종류로 발견됐다. “허~!” 스스로 민망한 웃음을 지었다. 5년 생활의 이삿짐 치고는 절대적으로 적은 건 사실이지만 필요 대비 비축량을 보면 그렇지도 않다.

몇해 전 농부이면서 수필가인 전우익 선생의 이야기가 뇌리를 스친다. “죽도록 벌어 죽도록 사 모으고 죽도록 버린다” 그 이야기를 듣고 물건을 사는데 신중해야 하며 물건을 사서는 용도가 다할 때까지 요긴하게 사용해야겠다고 다짐에 다짐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언제 샀는지도 모를 물건들이 가득했다니 절로 허탈함이 나올 수밖에.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도 깨우침은 있었다. “있으면 없는 것보다 편리한 것도 사실이지만 완물상지(玩物喪志), 가지면 가진 것에 뜻을 앗기며 물건은 방만 차지함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마음속에도 자리를 틀고 앉아 창의(創意)를 잠식하기도 합니다”

짐정리를 하는 손길이 더해질수록 생활공간을 침식해 오는 짐들로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불성실하고 치밀하지 못한 내 생활의 단편이자, 물질만능주의의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닌가 싶었다. 인생을 즐기라는 아버지의 말씀이 노래로 나오고 어느 아파트에 사느냐가 신분을 말해주는 참으로 어이없는 세상이 아닌가. 말초적 자극에 익숙한 삶의 공허함을 물질로 채우는 황폐함이야말로 인간성 상실의 시대이다.

이삿짐 정리하다 너무 비약한다. 물건들을 하나씩 끄집어내고 묶고 쌓아두다 보니 늘어가는 양에 스스로에게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그런가 보다. 그릇은 비어있으므로 쓰임이 있다는 사실을 이삿짐 하나하나마다 꼬리표로라도 달아 놓아야겠다.

/유 진 수 인천참여자치연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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