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재구성한 고전 영화 ‘왕의 남자’가 국민들을 새해 벽두부터 호탕하게 웃게 하고 있다. ‘왕의 남자’보다 포문을 일찍 열었던 영화 ‘태풍’이나 ‘킹콩’, ‘나니아 연대기’ 등 블록버스터들을 제치고 신선한 소재와 연출력 등으로 우리 땅에서 우리 배우들로 고전 풍속을 재구성, ‘우리네 놀자판’을 재생하는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필자는 일행들과 잠시 일상을 접고 ‘왕의 남자’를 보기 위해 극장에 갔다. 영화는 민초들과 뒹굴며 권력층들을 풍자하고 조롱하는 것을 일삼던 사당패 광대들이 우연한 기회에 연산군의 눈에 들어 권력암투에 휘말리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광대들은 왕과 권력층을 비웃고 동성애관계에 놓인 공길이란 여장남자를 통해 ‘권력의 놀음과 놀이’를 신랄하게 풍자한다. 이는 최근 청소년 동성애 문제와 맞물려 시대를 달리하는 ‘개인적 의식’의 관계로 접근하기도 한다.
‘왕의 남자’와 같이 역사 다큐멘터리가 아닌 고전 영화는 사실에 근접하지 않아도 되지만 역사적 사건을 작가의 상상력을 발휘, 영화로 재구성할 때는 영화가 담고 싶어 하는 현실적 시대상이 있게 마련이다. ‘왕의 남자’에 나오는 주인공 ‘공길’이 그것이다. 공길은 ‘조선왕조실록’이나 ‘연산군일기’ 등에 한차례 나오는 실존인물로 왕실 광대로 왕의 총애를 입고 종4품 벼슬을 했다. 천민 출신 공길은 논어(論語)를 읊조려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 임금이 임금답지 않고 신하가 신하답지 않으니 비록 곡식이 있더라도 내가 먹을 수 있으랴’고 말하니, 왕이 분노해 공길의 신분을 박탈하고 유배했다는 기록이 ‘왕의 남자’의 오브제(Objet)로 작용했다.
결국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된 ‘왕의 남자’에 등장하는 광대들이 왕과 권력층을 조롱하며 신명나게 벌이는 놀이판을 통해 관객들은 시대와 공간을 넘나들며 공감대를 형성하고 현실 속에서 풍자와 해학을 발견하며 대리만족을 얻고 있다.
당시 왕의 성은으로 천민에서 종4품 벼슬에 올랐던 공길이 목숨을 걸고 폭군 연산군에게 백성들을 위한 성군이 돼주길 바라며 꾸짖었다. 이처럼 현재 대통령이 남은 임기동안 국민들을 위한 바른 귀와 소리가 되어줄 충신이 없는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는 ‘왕의 남자’가 끝나고도 한참 관객들이 떠나간 자리에 혼자 않아 광대 공길을 떠올렸다.
/권 성 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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