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청연’과 인터넷 여론몰이

일요일, 최근 ‘친일’이란 낙인으로 날아보지도 못한 채 날개를 접어야 가고 있는 영화 ‘청연’을 보았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 ‘청연’에 대해 필자가 갖고 있는 정보는 각 방송사 영화 프로그램의 짧은 예고편과 인터넷의 ‘청연, 친일영화 논란’이란 제하의 기사 등이었다. 예고편만으로도 영화에 대한 기대가 부풀어 있었던 필자에게 인터넷은 ‘박경원이라는 잘 모르는 역사’에 대해 검증되지 않은 지식을 일방적으로 주입하면서 ‘청연’을 보고 싶은 영화의 순위 밖으로 밀어내고 말았다.

작은 영화관의 몇명 되지 않는 관객들과 같이 영화는 보았지만, 인터넷은 박경원의 친일 행적논란에서 일파만파로 번져갔다. ‘청연’은 친일영화로 낙인찍히고 최초의 여류비행사 논란, 일본자본 유입설, 영화를 호평하고 옹호하는 사람들에 대한 친일파 논란 등으로 장마철 곰팡이처럼 퍼져갔다. 박경원에 대한 친일여부는 여전히 논란 한복판에 있다. 우리 사회에서 ‘친일’이란 낙인은 권력을 갖고 있는 위정자들을 제외하면, 거의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친일영화란 입소문은 식민지 봉건시대에 공정한 경쟁을 이겨내고 성공을 이룬 여성을 ‘제국주의 치어걸’로 폄하하면서 극장의 간판을 끌어 내리고 있다. 이처럼 인터넷은 진실이 확인되지 않은, 역사적 평가가 끝나지 않은 사실에 대해 종종 몰이에 나서고 있다.

한때는, 아니 여전히 사회적 통제를 깨고 정보민주주의의 발전적 장을 가져다 줄 것으로 확신하는 인터넷이 이젠 정보의 오류와 의식의 왜곡을 확대 재생산하는 메커니즘으로 오용되고 있다.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이다. 사물과 사실에 대한 고정화된 틀을 깨고 다양한 시각과 의견을 교환하면서 사고를 풍부하게 만들어 가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인터넷의 역기능을 이야기하면 2~3년 전만해도 음란물, 욕설, 사이버테러 등이 제기됐으나, 언제부터인지 인터넷 여론몰이가 그 자리의 주류가 되어 가고 있다. 자신의 의견도 없이, 사실에 대한 확인도 없이 퍼나르기식 논리만 있을뿐이다. 광적일 정도로 하나의 의견에 집착하는 사회적 현상,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반대보다는 원색적인 비하나 ‘즐-’로 대표되는 속어가 난무하는 인터넷이 과연 정상일까. 인터넷을 비난하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오히려 사전검열이나 마찬가지인 인터넷 실명제만 가져올뿐이다. 영화 ‘청연’을 두둔할 생각은 없다. 다만, 영화가 영화로 평가받지 못하고 인터넷 여론몰이에 의해 추락해야 한다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유 진 수 인천참여자치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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