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2006년, 그래도 희망을 걸어본다

새해가 밝았다. 더 이상 들춰 볼 날짜도 없는 달력이 새 달력으로 교체되면서 비로소 해가 바뀌었음이 실감난다. 그러나 실감만 날뿐 신명이 나질 않는다. 그건 필자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그 느낌의 제일 앞에는 장기간 지속되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이 자리하고 있다. 언제나 지금의 어려움이 해결될 지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더 이상 지긋지긋하다고 해도 악착같이 살아가야 하는데, 세상사는 무슨 희망이라도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솔직히 새해가 밝았는데도 별로 반갑진 않다.

최고의 과학자가 양파껍질 같은 거짓말을 해대는 사회가 암울하기도 하고, 전자민주주의로 칭송을 받던 네티즌의 광폭한 여론쏠림이 어디로 튈지 몰라 두렵기도 하기 때문이다. X파일에도 철옹성을 구축하고 있는 삼성공화국에 어이가 없고 비정규직 노동자는 850만명을 넘어 더 확대시킬 법적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는 정치권을 대하기에 너무 당황스럽기 때문이기도 하다. 1%의 땅부자가 50%가 넘는 땅을 차지하고 엄청난 불로소득을 챙기는 사회, 5%의 돈부자가 50%가 넘는 돈을 차지하고 막대한 불로소득을 챙기는 사회, 극심한 양극화와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실효성 있는 정책이 부재한 사회. 이런데 무슨 살맛이 나겠는가.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대명천지에 아직도 색깔론을 들고 거리에 나서는 한나라당 의원들, 황우석 교수 병문안에 혈안이 됐던 정치인들, 방폐장 유치에 이념공세와 지역감정까지 동원하는 황당함, 탈북자가 복수를 위해 핵풍선을 날린다는 해괴한 소재의 영화 등. 더욱이 이런 코미디같은 일들이 되풀이되고 있어 눈살까지 찌푸리게 하니 입맛, 밥맛이 다 없을 지경이다.

이러 저러한 일들을 보면서, 그래서 새해는 단지 날짜만 바뀌었을 뿐이라고 강변하고 싶다. 평소와 같이 해가 지고 해가 다시 떴을뿐인데 세상이 바뀌기라도 한 것처럼 호들갑을 떨 필요까지 있겠냐는 것이다.

하지만, 포기하기에는 작은 희망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안다. 땀방울의 소중한 가치를 알고 소박하게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고 삼성공화국을 고발한 방송사 기자가 있고 거인을 쓰러뜨린 젊은 과학자들이 건재하다. 이렇게 희망은 있지 않은가. 진실이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진리가 있어 세상은 살아갈만 하다. 그 진실과 진리에 2006년의 희망을 걸어본다.

/유 진 수

인천참여자치연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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