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정상을 꿈꾼다. 계단을 오르는 것처럼 올라갈 때는 힘이 들지만 오르고 나면 몸이 가벼워지면서 기분이 좋아진다. 산에서 정상을 정복했을 때처럼 산이 높을수록 기분은 상승한다.
하지만 산을 올랐으면 오른 만큼 비례해 그 만큼의 풍광을 보게 되는 반면에 산을 오른만큼 내려와야 하는 게 자연의 순리다. 짧은 산행길에서도 인생을 반추하듯 아래를 내려다 보며 지나온 삶을 회상하다 보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원형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진땀을 흘리며 산을 올라 본 사람들은 산이 험할수록 산세가 아름다웠다고 한다. 그것은 고통 뒤에는 즐거움, 즐거움 뒤에는 고통의 대가가 따른다는 필연적인 수식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준다. 이는 누구도 예외일 수 없이 인생을 관통하여 일컫는 비유이기도 하다.
필자는 지난해 겨울까지만 해도 광교산에 올라 야간에 설경을 보는 재미에 빠져 있었다. 해가 저물고 나면 눈 쌓인 겨울 산을 배낭을 지고 올랐다. 산중턱을 지나 봉우리에 올라서면 힘들었던 지나온 시간은 잊어버리고 밤의 눈 덮인 설경에 매료돼 멍하니 한참을 바라보고는 했다. 겨울산은 오르면 오를수록 신비스러운 자태를 드러 냈고 도시와 멀어질수록 야경은 더욱 아름다웠다. 그런데 어느날 욕심을 더 내 조금 더 높은 곳 절경을 보려고 산봉우리를 향해 등산을 하다 그만 미끄러져 오른쪽 무릎을 다쳐 연골판 절제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산의 아름다움을 훔쳐본 대가로 신체의 일부를 떼어내는 고통을 감수해야했다.
현재 정상에 서 있을지라도 그것은 완전히 정복한 게 아니라 공간·시간적으로 일시적인 것 일뿐이다. 다만 더 높은 곳을 위한 시작이며 거기에는 희생이 따른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사회 전반에 걸쳐 극심한 경제적 빈곤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병술년 한해가 시작됐다. 요즘 날씨처럼 삼한사온(三寒四溫)이 깨졌다고 말할 정도로 우리 사회는 경제적 이상기류의 힘든 시간을 건너왔다. 하지만 우리는 믿는다. 현재의 고통은 정상을 향해가는 과정임을 확신한다.
/권 성 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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