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초대권 없는 극장

우스갯소리로 ‘한국인은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말이 있다. 공짜를 좋아하는 우리 정서를 조금은 과대 포장한 속설일듯 싶은데 연말들어 공짜 마케팅이 봇물을 이루고 있고 그 효과도 적지 않다는 소식이다.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는 사이트방문자중 매월 30쌍을 추첨, 해외여행을 시켜주는 파격적인 이벤트로 관심을 끌고 있는가 하면 한 대리운전업체는 회식이 잦은 연말임을 감안해 일정 횟수 이상 이용하는 고객들에게 푸짐한 경품을 지급, 화제가 되고 있다. 공짜를 좋아하는 국민정서를 절묘하게 파고든 공짜마케팅이 그동안 대형 마트 등에서 곧잘 활용되곤 했는데 이젠 모든 분야에서 불황을 이기는 하나의 마케팅기법으로 깊숙이 자리잡은 느낌이다.

그렇지만 유일하게 공짜 마케팅이 절대 활용되면 안되는 곳이 있다. 바로 공연장이다. 서울 한 대형 공연장에서 근무하는 지인은 인기 공연이 무대에 올라갈 쯤이면 하소연을 늘어 놓는다. 공짜 표를 구하려는 사람들의 성가신 청탁때문이다. 여기저기서 들어 오는 청탁으로 아예 휴대폰을 꺼놓고 업무를 볼 정도라고 한숨짓는다. 이는 대부분의 공연장 관계자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사항이기도 하다. 이쯤되면 공짜표에 맛들인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뜻인데, 원천적으로 각 공연장 관계자들이 겪고 있는 이 고충은 공연 관계자 스스로 초래한 자업자득(自業自得)임을 부인할 수 없다. 원래 초대권은 기획사측이 과도한 홍보비를 댈 수 없어 궁여지책의 한 방편으로 현금 대신 제공한 게 시초였는데 언제부터인가 각 공연장이 텅 빈 객석을 채우는 한 방편으로 이용해 온 것이다.

무릇 초대권은 마약과 비슷해 공짜 표에 한번 맛들이면 웬만해선 자기 돈으로 표를 사지 않는다. 보고싶은 공연이 있으면 청탁해 표를 구하면 된다는 공짜의식이 내면에 깔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연장은 초대권이 당장 객석을 채우는데 도움이 될지언정 장기적으로 건실한 운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독(毒)이 되고 있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공연장에도 개관 초기 초대권을 요구하는 사람들로 몸살을 앓았는데 현재까지 꿋꿋하게 초대권 없는 극장으로 잘 운영되고 있으며 다른 공연장으로부터 부러움을 사고 있다. 가끔은 출연단체들로부터 “다른 지역은 초대권을 주는데 유독 안산만 초대권을 안주냐”며 거친 항의를 받긴 하지만 어찌보면 초대권을 발행하지 않는 게 돈을 내고 공연을 보시는 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지도 모르겠다.

전통적으로 우리 사회는 공짜나 덤과 같이 무언가를 주고 받는 것에 대해 관대하게 여겨왔지만 공연장만은 예외다. 새해에는 우리 모두 공짜 표를 주지도, 받지도 않는 건강하고 건실한 공연장으로 가꿔보자.

/이 두 철 안산문화예술의전당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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