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어느 마을에 큰 부자집이 있었다. 농토가 많아 머슴을 10여명씩 두고 있었는데 섣달 그믐날이 되면 머슴들은 저녁을 일찍 먹고 마을로 나가 한해동안 주막에서 먹은 외상값이 얼마이며 평소 잘해주었던 마을 어른들에게 인사도 드리고 자기들끼리도 한해를 되돌아 보고 웃음꽂을 피우며 막걸리 파티를 열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날따라 저녁을 먹은 후 주인이 나타나 부탁을 하는 것이었다. 내일 아침 급히 쓸데가 있으니 새끼를 꼬아달라는 것이었으며 게다가 될 수 있으면 가늘고 길게 꼬아 달라는 것이었다. 모든 머슴들은 하필 왜 이때냐고 투덜거리며 오히려 두껍게 새끼를 꼬아 짧은 시간에 일을 마치고 앞다퉈 마실을 가버리고 말았다.
한 머슴만 평소에 잘 해줬던 주인을 생각하면서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동이 틀 때까지 가늘고 길게길게 새끼를 꼬고 있었다.
이윽고 새경 줄 시간이 돼 머슴들 앞에 나타난 주인은 금전 두가마니를 들고 와 쏟으면서 각자가 꼰 새끼에 금전을 마음껏 꽂아 가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물론 길고 가는 새끼를 꼰 머슴은 많은 금전을 꽂아가 넓은 농토를 사고 훌륭한 집을 지어 일생을 편안히 보냈다는 이야기다.
우리 문화의 일부분은 이러한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리라!
부모의 3년상이 어릴 때 세살까지 무릎에서 안아 길러준 은혜에 대한 보답이고 일생동안의 효도는 서말 넉되의 피로 나를 만들어 주시고 여덟섬 너말의 젖으로 나를 길러주신데 대한 은혜갚음이 아니었던가?
예로부터 나랏님은 그 어느 누구보다도 백성들에게 귀감이 되는 큰 스승의 역할이었음을 우리는 부인할 수가 없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나랏님들은 도무지 은혜 갚음을 모르는 것 같다. 지나간 정부의 나랏님의 은혜가 없었던들 어찌 지금의 나랏님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도와준 은인들의 입김이 채 마르기도 전 사정 없이 그들을 몰아 붙이는 건 정말 잘못된 부분만 바로 잡으려는 정의로움만의 발로일까. 그것도 국가의 망신을 세계 속에 내던지며 말이다.
이수일 전 국정원 차장의 자살을 바라 보며 무엇이 정치이고 무엇이 인간의 도리이고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문화의 한부분인 은혜 갚기 또한 무엇인지 정말 헷갈리는 현실이다.
/전병관 경희대 체육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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