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풍요로운 삶을 위하여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생물체는 크게 두가지로 분류된다. 어떠한 방법으로든 자기 스스로 자신의 자리를 옮기는 동물성과 뿌리 등을 내려 자신의 위치를 스스로 옮기지 못하는 식물성이 그것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 사람도 동물이긴 동물인데, 길가는 어느 누군가에게 이 ‘동물아’ 또는 ‘동물님’하고 부른다면 결코 부드러운 눈으로 쳐다 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 왜 인간은 동물의 한 부류이면서도 동물이 아니고 사람이라고 불러야 하고, ‘사람답다’라고 불려져야 기분이 흡족할까. 굳이 유교 사상을 찾아 인·의·예·지·신이 사람의 도리라고 논하기보다는 일전에 필자가 읽은 어느 책에서 마음에 와 닿는 표현을 인용해 보고자 한다.

“사람이 일반 동물과 다른 건 스스로 역사를 만들어 간다는 점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생각을 갖고 있다. 또 스스로 생각하면서 자신의 풍요로운 삶을 설계하며 개척해 나가는 게 바로 자기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결국 인생이란 건 자신의 풍요로운 삶을 계획하고 움직여 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풍요로운 삶일까. 힘 들고 어렵고 불편한 것 하나 없이 호의호식하는 건만 풍요로운 삶일까. 여기에 대한 대답은 누구나 당연히 ‘아니다’일 것이다.

사람마다 지상에서의 삶은 제각각이지만, 얼마나 후회 없는 삶을 살았는지 자문할 수 있다. 우리 인생의 도화지에 어떤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행복했던 인생의 한면을 채울지, 아니면 암울했던 이미지를 담을지는 자신의 단호한 선택에 달렸다.

배 부른 돼지는 인생의 참 맛을 알 수 없다. 거친 파도를 넘어 육지에 발을 디딜 때 안도감과 성취감, 이외에도 우리에게 주는 정신 세계의 풍요는 그 끝이 없다. 이중 하나가 미술품 감상이 아닐까 한다.

찬 바람이 이제 완연한 계절이다. 따뜻한 차 한잔과 함께 그림 하나를 감상하다 보면 손끝부터 육신 깊은 곳까지의 온기를 느낄뿐더러 얇은 지갑과는 반비례의 풍요롭고 넉넉한 기분으로 온몸에 새 힘이 돋을 것이다.

/최 수 아 수아아트갤러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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