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역사는 알고 있다

지난 일요일 복잡한 일상을 떠나 시원한 바람을 쐬고자 가까운 몇몇 사람들과 산행을 하고 돌아 오다 철원에 있는 백마고지 위령탑과 노동당사 등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그곳에서 본 몇줄 글의 일부분 ‘8천234명의 중국군을 사살하고 한국군도 504명이나 운명을 달리한 곳, 그리고 2㎞ 떨어진 곳에 위치한 노동당사. 해방 이후 6·25가 종전돼 대한민국 영토가 되기까지 5년동안 엄청난 억압과 학살’은 어린 시절의 처참한 삶이 바로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만들었다.

이번이 초행이 아니었는데도 이렇듯 가슴 한구석이 저려옴은 근래 들어 학자와 정치권에 의해 불거진 정체성의 문제로 대한민국 정통성을 수호하려는 인사들이 어느 사이에 기득권층과 보수·수구세력으로 내몰리는듯한 사회적 분위기 탓이 아닌가 싶다.

지난달 25일은 중국군 참전 55주년 기념일이었고 이에 따른 기념행사가 중국에서 열렸다는 뉴스를 접했다. 이 소식을 들으면서 필자가 느낀 건 분단한국의 책임을 미국으로 전가하려는 소수의 진보적 성향 인사들에게 수천년동안 우리를 핍박했고 지금도 동북공정이란 프로젝트로 역사를 왜곡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심지어 50여년 전 우리에게 총부리를 겨눴던 중국에 대해선 그 책임을 묻고 있지 않은지 의구심이 솟구치는 것을 억누를 수 없었다. 그들이 쳐들어 오지 않았다면 우리는 반세기 전 통일 한국을 건설했을 것이다.

최근 방문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은 맥아더 동상 철거에 대한 생각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많은 미국인들이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는 대답으로 그들의 불편한 심기를 간접적으로 드러냈다고 한다. 그러면 1천만 이산가족과 수백만에 달하는 인명피해를 입게 한 전쟁당사자인 김일성과 김정일 체제로 대물림하는 북한정권에게 책임을 묻는 행위는 왜 없는지, 색깔론이 아닌 한국사회의 역경을 헤치고 나온 한 성인으로 의문시되는 점이 많고, 울분이 치밀어 오름을 억누를 수 없다.

학자란 미명아래 국가의 정체성을 흔드는 주장을 펼치는 자나 한국전쟁의 주범 김일성이 훌륭한 지도자라 일컫는 어이 없는 자의 주장은 학문의 자유와 인권 존중이란 논리로 보호해주면서 대대로 세습되는 정권에 의해 수탈되고 있는 2천500만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말하는 자는 수구세력인지 참으로 안타깝고 억울하기 그지없다.

‘우리’를 되찾는 소중한 발걸음을 내디뎌 자라나는 후세들에게 보다 밝은 내일을 맞이하게 해줘야 하는 게 현 세대들의 막중한 책임이다. 백마고지 영혼들도 그것을 바라고 있음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조 용 호 道교육위원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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