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리니지의 단상(斷想)

공연에 관계된 일을 하다보면 가끔 난감할 때가 있다. 야외행사 팡파르를 울리기 직전 느닷없이 비가 온다든지, 공연 당일 기획사측이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공연취소를 알려 온다든지… 그리고 다짜고짜 자기정서와 맞지 않는 공연이었다며 환불을 요구하는 경우 참으로 곤혹스럽다.

올 연초부터 공연관계자들은 마치 비온 날 야외공연을 하는 것처럼 안절부절 못하고 냉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언제나 냉랭하고 국민정서를 살펴야만 되는 일본의 공연을 다수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우호교류를 강조하고, 특히 올해가 한·일수교 40주년이라는 취지를 설명해도 골이 깊을대로 깊은 반일감정 앞에선 속수무책일수밖에 없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과감하게 행사를 감행하기에는 국민들의 정서에 반하는 행동으로 눈치가 보이고, 취소하자니 투자비 날리고 신의까지 저버리는 문제가 발생되니 참으로 안타까운 처지인 셈이다. 21세기 글로벌시대에 살고 있는 이 시점에서 과연 ‘왜색’이라고 해서 무조건 배척하고 ‘극일’한다며 전면 문화교류를 중단하고 축소하는 것이 일본을 상대로 앙갚음을 하고 기를 꺾는 것일까. 이 같은 방법에 대해선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모름지기 손자병법에서는 “싸워서 이기는 것보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상”이라고 강조한다. 일본문화에 우월성을 갖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일본문화를 아는 것이 중요하고 꾸준한 문화교류를 통해 우리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며, 우리네 문화앞에 스스로 무릎을 꿇게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 않을까.

사실 지난 5월 안산문화예술의전당에서 자체제작한 ‘반쪽이전’이 일본문화청초청으로 일본 현지에서 5일간 공연을 한 적이 있다. 그 때도 한일관계가 미묘한 상황이어서 조심스럽고 긴장된 상태로 일본을 방문했고, 일본 측 관계자들과의 만남에서도 ‘혼네’(속마음)와 ‘다테마에’(겉치레)가 다른 국민이라는 생각에 회의시간내내 ‘경계심’을 늦추지 않은 촌스러움을 연출하여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그렇지만 일본 관객은 우리작품을 너무나 좋아하고 전반적인 한국문화에 대해 이해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문화교류의 힘’을 실감하였다.

이달에 안산에서 ‘한일우정의 해’를 맞아 일본 ‘블랙텐트’ 극단의 <리니지> 란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 관객들에게, 특히 우리국민들에게 일본공연도 봐주고 잘하면 박수를 쳐주는 일본문화의 어머니다운 의연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두 철 안산문화예술의전당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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