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새참(사이참)에 대한 단상

초가을이 되면 생각나는 것이 있다. 열매가 익어가는 들녘에서 땀흘려 일하다 잠시 쉬고 있노라면 멀리서 함지박에 무엇인가 담아 가지고 종종 걸음으로 일터에 나온다.

정성스럽게 준비한 아낙의 손길로 바로 새참(사이참)을 만들어 왔다. 냄새조차도 매우 구수한 느낌이다. 그때에 지척에서 지나가는 길손이 보인다.

“여보시오. 여기 와서 잠시 쉬어가시지요” 마치 기다렸다는듯 통성명하곤 함지박을 사이에 두고 정겨움이 시작된다.

가을 하늘은 짙어만 가는데 언제부턴가 이러한 정경이 있어 왔다. 지난 60년대쯤인가. 나는 그때 실제로 이러한 목가적인 모습을 목도했다. 우리와 우리 이웃사이에 배려해 줄줄 아는 정겨운 모습이다.

지금 우리 족속의 핏속엔 현대 사회에 밀려 사라졌을지라도 지나가는 길손을 불러 함께 나눴던 모습들은 마음의 영상에서 사라질 수 없으며 그 정신은 지금도 혈관을 흐르고 있다.

얼마 전 미국 뉴올리언스에 허리케인으로 상상할 수 없는 이재민과 생명을 잃어 버렸다. 이때 피해를 입은 우리 교포도 분명히 있었는데 임시 숙소로 정해 놓은 컨벤션센터에는 한국 계열이 한 명도 찾아볼 수 없었다는 기사를 보며, 또 이어지는 쇼킹한 내용은 해를 입은 그들을 교포들의 집에서 보호하고 있었고 한인 교회도 기쁘게 보호하며 고난에 동참한 모습이 비쳐진 것이다.

이러한 모습을 미국 사회도 닮았으면 좋겠다. 그러나 우리 족속에겐 하루 말미에 되어진 것이 아니라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기쁨으로 냉수한 그릇과 같은 베품의 긍휼의 삶이 선대들부터 핏속을 통해 내려온 것이 아닌가.

슬픔과 두려움을 가진 이웃들을 돌볼줄 아는 모습이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이러한 족속들의 장래가 밝다. 희망적이며 결코 소멸되는 정신이 아니라 더욱 필요한 정신으로 함양 되어져야 할 것이다.

가을이나 봄이나 새참(사이참)이 주어졌던 아름다운 그 영향은 생각만 해도 지워질 수도 없겠지만, 가을의 덜마른 낙엽 타는 구수한 내음새가 나는듯 하다.

/안 명 환 수원명성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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