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0’에서 출발하는 한국인

지구상에는 수많은 동물들이 살고 있다. 이중 침팬지는 그 많은 동물들 가운데 가장 높은 지능지수를 가지고 있으며 교육을 통해 10년 즈음 생활하면 어린이 5~6세 정도의 지능을 갖출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침팬지가 언제나 동물원에 남아있는 이유는 바로 0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문화는 예를 들어 어떤 우수한 인간이 태어나 100이라는 문화를 남긴다면 다음에 오는 인간은 100에서 150으로 200으로 쌓아가지만, 침팬지는 아무리 훌륭한 침팬지가 출현하여 높은 문화를 남긴다 해도 다음의 침팬지는 언제나 0에서 출발하는 때문으로 오늘날까지도 동물원에 남아있다.

그런데 오늘날의 현실을 조명해 본다면 더욱이 똑같은 우리의 문화를 전해 받은 우리의 제자 나라라고 할 만한 일본의 역사와 비교해보면 우리는 바로 침팬지의 역사와 같은 0에서의 출발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일본은 과거 역사 중 단 한번도 천왕을 죽인 일이 없으며 특히 오늘날도 아무리 유능한 신임 대신이라고 할지라도 절대로 정책을 한꺼번에 바꾸는 경우는 없다. 바꾼다 해도 제일 나쁜 것 하나, 제일 좋은 것 하나를 심사숙고해서 버리고 입안하는 정도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잘잘못은 제쳐두고서도 수백년을 이어내려 오는 전제군주 정치를 이승만이라는 미국 유학생 한 사람이 이 땅에서는 전혀 새로운 미국식 민주주의를 들여와 0에서 출발한 것을 필두로 장면정부도 박정희 정부도 전두환 정부도 그리고 그의 친구였던 노태우 정부도 이어서 민주를 외쳤던 두 대통령인 김영삼씨도 모든 것을 바꾸면서 0에서 출발하였고 김대중씨 마저 제주4·3폭동, 대구폭동, 여순반란사건, 6·25전쟁을 보는 종래의 역사적인 시각까지도 바꾸어 0에서 출발하였다. 지금도 우리는 개혁 개혁을 외치면서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을 잊고 있다.

이러다간 이민족의 역사를 고조선에서 다시 짜야 할 판이다. 전통이 있는 문화민족이 이렇게 늘 0에서 출발하는 것을 보았는가? 제발 지금의 눈으로 과거를 보지 말자! 과거는 어떠했던 과거의 현실위에서 가장 바람직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아니 우리역사는 힘없고 가난한 나라라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차라리 ‘왜 그러지 않았으면 안 되었을까’를 생각하면서 다시는 0에서 출발하는 동물원의 침팬지와 같은 한국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가난하고 침략에 한맺힌 우리를 이제 다시는 배고프고 나약한 나라로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서는 안 된다.

/전 병 관 경희대 체육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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