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지자체마다 문화적 성격을 띤 축제니 잔치니 하는 행사가 많아졌다. 반가운 일이다. 다만 그러한 잔치니 축제니 하는 것이 행정단위와 행정의 경계선에 얽매인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이를테면 공주와 부여는 백제의 문화적 전통이 숨쉬고 있는 하나의 지역인데 행정적 단위에 얽매어 서로가 서로의 축제를 외면한다면 되겠는가? 광주시와 남양주시가 실학박물관의 유치를 둘러싸고 겨룬적이 있는데 정약용이나 실학사상(實學思想)은 지금의 행정구역과 관계가 없는 이 지역 전체의 문화적·학문적 유산인 것이다.
이를테면 남한산성과 도요지 분원은 조선왕조 500년과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데, 이 두 고장이 경기도 광주시의 행정구역에 속해있다고 해서 서울시가 무관심 할 수 없다. 경기도지사와 서울시장이 똑같이 이 지역의 소중한 문화적 유산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적어도 문화적 측면에서 본다면 경기도와 서울은 하나의 문화적 지역이요, 벨트로써 어떠한 경계선을 긋는다는 것은 무의미하며 불가능하다.
한반도는 지리적으로 봐서 결코 넓은 면적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한반도는 외세에 의해 남북으로 분단되어 있고, 그 반쪽에서도 경상도니 전라도니 중부권이니 해서 지역주의가 여전하고 나아가서는 지자체를 내세워 소행정단위로 경계를 긋는 폐쇄적 사고가 득세하는 느낌이 없지 않다. 하기야 우리의 초창기 역사에 삼국시대가 있었다. 고구려, 백제, 신라… 이 세 나라는 한반도와 연해주 남만주를 무대로 유동적인 국경을 긋고 독자적 문화를 발전시켰다. 그들은 그 시대의 문화적 공통분모를 가지면서 각기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고구려가 우아하면서도 발랄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면 백제는 우아함과 섬세한 균형을 자랑했고 신라는 우아하면서도 밝은 너그러움을 문화전반에 남기고 있다. 이러한 삼국의 문화유산을 계승해서 동서남북으로 갈리는 지역주의가 뿌리를 내린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왜냐하면 문화는 서로 만나고 부딪쳐서 분단되는 것이 아니라 융화되고 하나가 되는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것은 정치적 군사적 힘의 균형에 의한 것이겠지만, 그 밑바닥에는 문화의 결집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통일신라는 한반도의 문화를 하나로 융화시키고 고려, 조선왕조로 이어져 오늘에 이른 것이다. 중국이라는 큰 나라, 대륙에는 여러나라가 공존하기도 하고 병합되기도 하고 분열하고 서로 정복하며 흥망성쇄를 거듭했으나 오늘날 하나로 조화된 나라를 이룩하고 있다면 국경과 벽을 허무는 문화의 힘에 의한 것이다.
문화에는 국경이 없다. 우리는 지역문화의 전통과 특성을 살려나가야 하지만 그것이 문화적 결집력으로 작용해서 폐쇄된 지역이 아니라 넓은 지역으로 한반도 전체로, 아시아로, 세계로 펼쳐나가는 힘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김 정 옥
연출가·예술원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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