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長安과 八達

이곳 수원에는 조선 후기 정조시대에 축조된 화성이 있다. 긴 성곽은 물론 행궁과 상가, 그리고 백성들의 가옥이 근대적 기획에 따라 잘 배치된 읍성은 고장의 자랑거리이다. 기능성과 아름다움이 함께 빛나는 정말 훌륭한 건축물이다. 성에는 네 군데 문이 있다. 정문인 장안문(長安門)이 북쪽에 자리 잡고 있고 남북 기축 선을 따라 대칭적 자리에 팔달문(八達門)이 놓여 있다. 장안이라면 이상적 왕권주의 국가였던 옛 중국 한나라의 도성 이름이고 팔달이라면 수원부의 주산을 일컫는 토착 지명 아닌가?

“북문은 이상적인 왕권을 상징하고 남문은 현실의 주산에서 이름을 따온 셈이다. 이상과 현실의 조화를 성문 이름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건축 연구가 김동욱 교수의 혜안이다. 이름 뒤에는 지향이 있다. 욕망이 꿈틀거린다. 화성의 건축에는 이상과 현실, 외래와 토착, 편하게 머묾과 힘차게 뻗어나감이라는 대척적(혹은 그렇다고 여겨지는) 생각들을 동시에 끌어안아야 한다는 근대적 각성이 있다. 두 가지 생각의 엉성한 절충을 통해 하나의 생각으로 환원하려 하지 않고 차이 있는 둘을 병치하는 유연성이 있다.

‘성에 들어가는 입구는 여럿이다. 어떤 쪽도 특별히 낫지 않으며 어떤 입구도 아무런 특권을 가지지 않는다. 더 나은 입구도, 더 못한 입구도 없다’는 인식은 소설 ‘城’을 쓴 카프카의 것이었다.

문제는 성 안에 들어가는 것이다. 장안문으로 들어갈 수도 있고 팔달문으로도 들어갈 수 있다. 한 쪽 문만을 통해 성에 들어가야 한다는 고집은 어리석다. 한 쪽 생각에만 집착하는 것은 질환이다. 편집질환 말이다. 다른 문도 입구로 인정하는 게 필요하다.

생각의 차이와 타자성을 존중하고, 대척적인 것들을 아우르는 입장은 이미 오늘날의 경제생활에 있어서 유효한 태도로 자리 잡고 있다. 상품 생산에 있어 표준화보다 차별화가 더 고도화된 전략으로 이해되고 있는 기업 현실이나, 개성과 창의라는 말이 상투적 수식어로 붙어 다니는 소비 광고가 그런 시대가 이미 와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장안문과 팔달문을 잇는 화성의 남북대로는 행궁에서 동문으로 나가는 동서대로와 십자가(十字街)에서 교차한다. 이 근처가 조선시대 전방(廛房)이라 불렸던 큰 가게들이 모여 있는 시장이다. 장안으로도 팔달로도 시장에 이르게 된다는 이 상징성. 18세기에 이루어진 이러한 화성의 도시설계를 ‘차이의 존중을 통한 시장 넘기’ 권고로 다시 읽을 수도 있지 않을까?

/왕 용 기 한국은행 경기본부장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