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망각

망각은 인간에게 준 신의 선물중 아주 귀중한 선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사람에게 망각이 없다면 살아가는데 많은 불편이 따를 것이다. 망각의 기능이 있었기에 사람들은 괴로움도 슬픔도 잊게 되고 원한 맺혔던 사람들과도 정상적인 관계를 회복하며 살아가게 된다. 개인적인 삶에서의 망각은 피할 수도 없고 각자 적응하며 살아가지만 공적관계 또는 사회적, 조직적 일들마저 망각하며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개인적인 사생활에서도 기억해야 할 가치있는 사건들은 기록으로 남기거나 후대에 전해주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오늘을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권력자가 자신의 과오를 감추고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사실들을 왜곡하여 기록을 남기려는 것을 막기 위하여 사가들의 처절하리만큼 어려웠던 삶의 이야기들을 우리는 종종 듣게 된다.

일본의 교과서 왜곡은 자기 조상들의 과오를 후세들에게 감추기 위한 비겁한 잔꾀며, 중국의 역사왜곡은 향후 세계적인 거대국가를 꿈꾸며 역사부터 유리하게 각색하려는 엉큼한 속셈이 보이는 작업이다.

망각은 순기능적인 역할만을 갖는 것은 아니고 역기능적인 역할도 생각보다 많이 갖는다. 요즈음 우리 주변에서 역사 바로 세우기 또는 과거사 정리 등 사람들의 망각의 창고에 쌓여있는 기억들을 들춰내느라 시끄럽다.

이러한 망각의 역기능을 조금이나마 보완해주는 곳이 바로 박물관이다. 필자가 박물관에 처음 부임했을 때 선임 하셨던 분이 야외전시장 증기기관차 안내판에 “1942년 경성공장에서 제작되어 청량리~부산간 운행되었다”는 내용 중 ‘청량리~부산간’의 오류를 ‘서울~부산간’으로 바로 잡았다며, 당시에 경부선 아닌 청량리~부산간 열차가 있었겠느냐는 주장에 나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었다. 그 후 옛날의 열차시각표를 보다가 아차 했다. 그 당시의 시간표에서 부산역 08시 30분 출발 청량리역 22시10분 도착, 청량리역 07시45분 출발 부산역 21시 16분 도착하는 열차가 있었음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결코 역사는 확실한 증거 없이 추정이나 판단으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큰 교훈을 얻었다. 지금부터라도 우리는 정확한 기록을 남기는 습관을 길러야겠다.

전쟁을 마치 영화 속의 게임처럼 생각하는 세대에게 전쟁의 참혹상을 알려줄 책임도 전쟁을 겪고 망각해가는 세대들에게 있는 것이다. 망각의 역기능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오직 정확한 기록의 보존뿐이다. 옛것을 새것으로 개선해 나가는 것은 좋지만 옛것에 대한 기록은 소중히 보존되어야 한다.

/손 길 신 철도박물관장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