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중순, 남북 작가들이 북한 땅에서 모임을 가진 것은 1945년 12월 13일의 조선문학가동맹 총회 이후 실로 60년만에 이룬 경사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첫 만남에서 남북문학 교류를 위한 상설 기구로 ‘6·15민족문학인협회’를 결성한 것과 협회기관지 ‘통일 문학’을 발간하기로 한 것, ‘6·15통일문학상’을 제정할 것 등을 합의한 것은 높이 살만하다.
그러나 실망스런 부분도 없지 않았다. 순수 작가들의 회의에서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아래 민족자주, 반전평화 정신으로 창작에 매진할 것’ 등 다분히 정치성을 띈 문구를 공동선언문의 서두에 넣은 것은 신중하지 못했다. 이는 앞으로의 남북 작가들의 모임의 방향을 자칫 정치적으로 몰고 갈 위험이 있다. 실망스런 점은 또 있다. 오랜만에 마주한 남북 문학인 행사가 매우 경직됐고 부자유스러웠다는 점이다. 한 예로 남쪽 작가들이 북쪽 작가들과 함께 어울려 시정(市井) 주점을 찾아가 담소를 나누고 싶었어도 그게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런 분위기였으니 가정 방문 운운은 더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해서 일부 젊은 남쪽 작가들이 터놓고 불만을 토로했는가 하면, 어떤 작가는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는 말로 그날의 답답함을 표현하기도 했다.
물론 첫 숟갈부터 배부르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분단 60년의 단절세월이 한두 번의 만남으로 해서 말끔히 걷힐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순수문학인들의 만남이니 만큼 적어도 자유스런 분위기 아래서 기탄 없는 심정을 주고받는 자리 정도는 됐어야 하지 않았을까. 이산가족의 상봉 같은 극적인 만남의 현장이야 연출할 수 없었다 하더라도 스스럼없이 의견을 나누고 문학을 이야기하는 일만은 그 어떤 것으로부터도 구애받지 말았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문제는 지금부터라고 본다. 남북 작가들의 모임은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가운데 문학적인 접근부터 하는 게 순리요 도리라고 본다. 자칫 이번 공동문 서두와 같이 정치성 구호가 문학 위에 놓이게 된다면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문학적 접근도 마찬가지다. 현재 남한의 문학과 북한의 문학 사이에는 적지 않은 차이와 간격이 있다. 남한의 문학이 인간의 내면 의지를 자유롭게 밝힐 수 있는 반면에 북한의 문학은 소위 ‘주체문학’으로서 체제의 벽을 넘지 못하는 한계성을 지니고 있다. 문학의 표현에 있어서도 남한 문학과는 그 폭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좁을뿐더러 많은 제약을 받는 게 현실이다. 이를 어떻게 극복하느냐 하는 것도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고민은 또 있다. 반세기가 넘는 저 세월의 뒤안길에서 파생된 심각한 언어의 이질화 문제다. 언어의 이질화는 문학적 소통을 어렵게 할뿐 아니라 반쪽 민족어라는 오명을 벗을 길 없다. 따라서 이는 가장 시급히 서둘러야 할 작업으로 남북 작가뿐 아니라 국어학자까지 참여해야 마땅하다.
무릇 일은 쉬운 것부터 시작하는 게 성공률이 높다. 그러자면 우선 남북 작가들이 자유롭게 만나 대화하고 토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 뒤에 신뢰가 더 쌓이면 그때 가서 상호 방문을 하는 게 순서일 것이다. 이는 상반된 체제 안에서 살아온 두 사회를 이해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며, 인간의 삶을 진실하게 기록하기 위한 가장 뜻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남북 작가의 교류는 이미 시작되었다. 너무 성급한 기대보다는 상식적인 것부터 차근 차근 챙기고 해결해 가는 진지한 노력이 요구된다.
/윤 수 천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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