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불법도청사건 수사는 정당한가

97년도 대선 당시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의 비밀 도청팀이 삼성그룹의 불법정치자금을 전달하기 위한 모의과정을 비밀리에 녹음하였다는 이른바 ‘X 파일’ 사건이 발생하여 전국을 흔들었다.

이와 관련하여 열린우리당은 불법도청의 시기가 김영삼 전대통령 시절인 사실을 부각시키면서 당시 여당을 계승한 한나라당을 집중 비난하고 있고, 이에 뒤질세라 일부 시민단체에서는 정작 불법도청한 장본인들은 제외하고 도청당한 관련자들에 대한 고발장을 제출하였다.

과거 검찰에 몸담은 필자로서는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기도 그렇고 가만히 있기도 곤란한 입장에 처해 있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문제는 불법도청으로 수집된 녹음내용을 근거로 도청당한 사람들의 부정을 처벌할 수 있을지 그리고 도청한 사람들을 처벌할 수 있겠느냐 하는 점일 것이다. 의혹과 감정만을 앞세운다면 ‘X 파일’에 나오는 사람들에 대한 수사 및 재판이 이루어져 불법대선자금 제공자 및 수혜자들을 처벌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통신비밀보호법 제3조와 그 반복 규정 제14조는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하지 못하도록 하고, 이를 위반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엄격히 규정하고 있다(동법 제16조 제1호). 결국 이 법은 불법도청과 관련하여 개인의 대화비밀을 다른 무엇보다 우선으로 보호하겠다는 취지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된다.

물론 불법 대선자금 행위도 입증만 된다면 처벌을 받아야 할 것이지만 이번 ‘X 파일’의 경우는 좀 특이하다. 우선 미림팀에서 녹음한 ‘X 파일’의 당사자들이 저지른 행위의 대부분은 이미 공소시효가 완료되어 처벌이 불가능하며,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에 기초한 수사는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또한 ‘X 파일’의 전체내용도 공개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부 노출된 행위자들만 처벌하는 것도 불합리하며, 이러한 ‘X 파일’이 공개된 동기 및 과정도 매우 의심스럽다.

물론 처벌여부를 떠나 의혹을 해소하고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는 차원에서 수사를 해야한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으나, 처벌하지 못할 것을 알고 있는 검사에게 철저한 수사를 기대할 수 없어 검찰에 대한 불신만 조장할 것이다. 법치국가인 우리나라에서 의혹이나 감정만으로 불법도청으로 수집된 처벌할 수 없는 사안에까지 수사의 주체인 검찰이 나서게 하는 것이 타당한지 자문해본다. 이번 사건은 곧바로 처벌을 전제로 하는 수사에 착수할 것이 아니라 먼저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는 국회 차원에서 진상조사를 하는 과정 등을 거치게 하는 것이 옳을 듯싶다.

/고 조 흥 국회의원(포천·연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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