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의 입장을 전혀 헤아리지 못하는 젊은이가 늘고 있다. 이들은 육신에 편하거나 달콤한 것을 찾을 뿐이지 현명하게 이기적이거나, 자신을 귀하게 여기지는 못한다. 성적이 부진하면 떨어져 죽어버린다. 지하철 안에서 지적을 받으면 위협적이 되거나 폭행을 한다. 인터넷게임에서 적을 제거하듯 동료를 죽이고도 태연하다. 자기잘못 은폐를 위해서는 범죄를 서슴지 않는다. 교제를 반대하면 상대집안을 공격한다. 인터넷상에서 살인투쟁을 벌이듯 험악한 언어로 상대방을 공격한다. 이러한 탓에 건강한 어른들도 사회에서 겪는 무리함에 눈을 감아버리게 되었다. 의학적으로 면역기능을 상실한 국가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러한 병은 어느 날 갑자기 발생한 것이 아니라, 면역체계 형성과정인 교육이 부실하였기 때문이다.
윤리의식의 골격은 어린 시절에 완성된다. 자신을 귀중하게 여기고 가치 있는 일에 희생을 감내하려는 품성은 이때 생기게 된다. 그래서 가정교육과 초등교육이 중요한 것이다. 부모들은 ‘남을 존중해야 자기가 귀해진다’는 것을 명심하고, 아이를 사회에 내보내기 전까지 ‘나 좋은 것만 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부모자신이 남을 배려할 줄 모르고 자기자식만을 귀하게 여길 경우, 이는 진실로 아이 자신에게 독(毒)이 된다. 아이에게 내재된 무한의 가능성을 살피며 키우지는 못하고 하루 삼시 다른 아이들과의 말초 비교에만 집착할 경우, 부모들은 자신이 원하던 자식을 절대로 볼 수가 없다. 이들은 친구와 다투어도, 성적이 떨어져도, 가정불화가 생겨도, 아버지가 실직을 하여도, 대학진학에 실패를 하여도, 이성교재에 문제가 생겨도, 결혼생활로 고통이 발생해도 쉽게 죽음을 선택하게 된다.
과거에는 학교교육에 가정교육을 보완·교정·완성하는 기능이 있었다. 가정이 불우한 아이도 훌륭한 인재로 클 계기가 주어졌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선생님들이 눈을 감아버렸다. 부모도 우습게 여기도록 과잉보호된 아이가 선생님을 존중하지도 않을뿐 더러, 교사의 교육적 소신은 거듭되는 봉변으로 절멸되었다. 남을 존중하고 같이 사는 지혜를 배우려고 마련된 배움터에서 ‘야 이 XX야, 너 잘 가르쳐봐!’ 하며 부모들이 팔짱끼고 지켜본다면, 이것은 바로 망국지형세(亡國之形勢)다. 학교일로 속이 상하면 자살을 해버리는 선생님도 있다. 이 들은 섬섬옥수(纖纖玉手)의 마음으로 세상과 제자들을 대하다가 허망함에 생을 마감한 것이다. 요즘의 혼란한 세상을 바로잡을 해답은 ‘옛날 선생님’의 부활이다. 우리들의 존경 속에 다시 태어난 이분들만이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큰일에 목숨을 걸 줄 아는’ 아이들을 육성할 수 있다.
/배 기 수 아주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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