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년 동안 장롱 속에 고이 고이 모셔둔 녹색살인면허증을 꺼내어 집을 나섰다. 가능하다면 끝내 하지 않고 싶던 일,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오랫동안 미뤄왔던 일, 하지만 지금 발등에 떨어져 지글지글 타고 있는 소용과 필요의 불 때문에 더 이상 피할 도리가 없는 운전 연수를 받기 위해서였다.
운전면허증 소지자만 2천만 명이 넘는 현실에 고리타분한 느림보라 흉봐도 어쩔 수 없다. 제트기를 타고 쫓아가도 모자랄 시대에 쇳덩어리 자동차 하나 운전하지 못하여 쩔쩔 매는 내 모습은 내가 보기에도 한심하다. 하지만 지금껏 나는 어떻게든 운전을 하지 않고 버텨보려고 억지를 부려왔다. 집안에 틀어박혀 있는 일이 가장 행복하다고, 이따금 하는 외출이라 해봤자 대개가 술자리에 참석할 일이니 자동차는 오히려 애물일 거라고, 살벌한 전장과도 같은 도심의 거리에 나까지 체증을 보탤 것 있겠냐고, 그도 모자라 지은 지 20년이 넘는 아파트에 턱없이 부족한 주차공간이며 여섯 명이 달리면 6등, 다섯 명이 달리면 5등을 하는 둔한 운동신경까지 모든 이유가 총동원되었다.
핸들을 얼마나 꽉 움켜잡았는지 키보드를 치는 손이 후들거린다. 브레이크와 액셀러레이터를 번갈아 밟기에 분주했던 다리는 맥이 빠져 느른하다. 신호등이며 남의 차선이며 시시때때로 끼어드는 오토바이와 보행자들을 신경 쓰느라 잔뜩 긴장했던 몸에 열기와 오한이 번갈아 든다. 그나마 속도를 내지 못하고 비척대는 연수생들의 모습이 짜증나기보다는 재미있다고 말해주는 강사가 고맙다. 몇 해 전 나는 남편을 조수석에 태우고 연수를 받겠노라 나섰다가 멀쩡히 주차해 있던 남의 차를 들이받고 사고 상황보다 남편의 호통에 질려 다시는 운전 따윈 시도하지 않겠노라 선언했던 적이 있다. 운전 연수 받다가 이혼했다는 풍문이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았다.
그런데 정작 두 시간여를 길에서 헤매다 돌아와 보니, 역시나 나의 공포를 키운 가장 큰 적은 타인이 아니라 나 자신이다. 낯선 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것이다. 무섭다, 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책임을 미루고 나의 내부로 도피한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다, 둔하고 무심하고 주의력이 없고 산만하여 그런 일 따위엔 적합지 않다고 치부해 버린다. 하기 싫다는 고백을 할 수 없다는 변명으로 대신한다.
하지만 이것이 비단 운전만의 문제인가? 자기계발을 독려하는 책 중에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라는 제목이 있다. 변화경영 전문가로 불리는 저자는 대량실업시대에 살아남을 길은 자기혁명밖에 없다고 강조하며 “변하라! 자기를 구원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뿐이다!”라고 외쳤다. 물론 ‘살아남는’ 일은 중요하다. 우리는 변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남에게 뒤처지지 않고 살아남기 위한 이유를 떠나서도 익숙한 상황, 익숙한 방식, 익숙한 나태와 관성으로부터 탈출해야 할 까닭은 충분하다. 익숙한 삶은 편안하다. 그러나 반드시 지루하다. 권태 속에 불안이, 불평불만이, 타인을 향한 증오가 싹튼다.
아직 배울 것이 남아있어서 다행이다. 배워야 할 일들이 숱하게 많아서 행복하다. 초보자가 되어 벌벌 떨며 내 안의 두려움과 싸우는 동안, 나는 저절로 겸허와 겸양을 배운다. 누구나 다 그렇게 시작한다. 당장 내일 강습에 대한 걱정이 태산이지만, 나는 스스로를 토닥이며 격려한다. 시간이, 그리고 너 자신이 너를 도울 것이다.
/김 별 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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