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우리나라의 음악사에서 서양악기가 가장먼저 도입된 것은 트럼펫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충정공 민영환이 1896년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의 대관식에 참석하여 그곳 군악대를 보고 감명 받아 트럼펫을 얻어 가지고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전까지는 대원군의 쇄국정책으로 외국과의 교류가 어려웠음을 고려한다면 다른 서양악기보다 빨리 도입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후 민영환이 고종에게 군악대 창설을 건의하여 대한제국의 군악대가 창설되었고 독일 지휘자 프란츠 에케르트가 초빙되었다.
에케르트는 1901년 2월 19일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갖은 노력을 기울여 완전히 백지상태였던 군악대를 불과 6개월 만에 놀라울만한 수준으로 끌어올리는데 성공하였다. 당시의 유일한 영문 잡지였던 ‘Korea Review’의 1901년 9월호는 광무5년 9월9일(양력)의 고종황제 탄신일에 베풀어진 군악대 연주에 대해서 기록하였는데, 기억할만한 순서는 새로 조직된 군악대의 첫 출연일 것이다. 군악대는 에케르트의 지도로 훈련되었고 모두 27명의 대원들이 단지 4개월 남짓한 연습으로 외국의 악기들을 그렇게 훌륭히 연주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고 찬양 보도하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군악대는 3년이 채 못 되어 본고장의 군악대를 능가하리만큼 훌륭한 연주를 하게 되었으며, 1902년 프랑스 프리앙트가 왔을 때 제법 교환연주도 해냈고, 그뒤에 독일의 제6함대 군악대와 파고다공원에서 경연을 할 만큼 실력이 부쩍 늘었다.
그러나 이러한 군악대도 조선이 무너져 가는 1907년 제3차 군악대 해산조처에 휩쓸려, 새 주인을 찾아 통감부 소속의 군악대가 되었다가 다시 일제의 비호아래 구슬픈 나팔을 불게 되었다. 군악대의 은사 에케르트는 1906년 8월 6일 한국에서 별세할 때까지 군악대육성에 이바지하였고 그는 양화진에 묻혔는데, 1902년 8월에는 대한제국국가를 작곡하여 바치기도 하였다.
에케르트의 제자인 백우용과 정사인은 김인식, 이상준, 김형준 그리고 홍난파로 이어지는 우리나라 서양음악도입기에 큰역할을 한 음악가들이다.
100여년이 지난 최근의 우리나라 음악계는 외국인 연주자와 지휘자들로 채워지고 있다. 무분별하게 유입되는 그들을 볼 때 서양음악에 대하여 전혀 몰랐던 때에 군악대를 지도했던 에케르트를 생각해 본다.
/윤 왕 로 화성시청소년교향악단 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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