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길고 지루했던 겨울이 지나고, 마침내 봄이다. 봄! 그 야무지고 앙증맞은 이름을 중얼거리면 입안에 새콤달콤한 침이 괴는 것 같다. 이런 봄날엔 아무래도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기가 힘들다. 당장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일상이 아무리 분주하다고 해도, 그럴수록 더욱 몸은 바깥으로 달려 나가고 싶어 들썽거린다. 때 아닌 폭설과 이상한파로 뒤늦게 온 봄인지라 꽃들은 순서 없이 그야말로 앞 다투어 피어난다. 목련, 산수유, 진달래, 개나리 그리고 조롱조롱 망울을 매단 벚나무와 앵두나무까지.
아무리 솜씨 좋은 화가가 정교하게 그려낸대도, 저 수선거리는 연녹색 향연을 흉내 낼 수는 없을 것 같다. 나는 감탄하고 거듭 감탄한다. 인간이 예술이라는 지고한 가치를 지어낸 연원도 자연을 모방하고자 하는 심리에 있다지만, 어찌한대도 ‘스스로 그러한’ 자연을 완벽히 본떠 옮기지는 못할 것이다. 자연과의 투쟁에서 승리한 인간이 문명이라는 놀라운 바벨탑을 쌓아올린 것도 사실이지만, 과학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생활이 편리해질수록 한편으로 자연에 귀의하고픈 본능이 커진다. 꽃이 피고 지고, 벌 나비가 넘나들며 화분을 옮기고, 열매가 맺히고 낙엽이 지는 지극히 단순하고 도저한 이치. 아무리 의학이 발달하여 수명을 연장하고 난치병을 치유한데도 인간의 삶과 죽음 역시 종내는 그 ‘자연스러운’ 과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얼마 전 강원도 양양에서 큰 산불이 일어났다. 산불의 특성상 최초 발화 지점에 목격자가 없는 한 정확한 원인을 알 방법이 없다고 하지만, 관계자들은 산길을 지나던 운전자가 함부로 버린 담뱃불 때문이 아닐까 추정한다고 한다. 산불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여 복구 작업을 벌이고 소방방재시스템을 구축하고 대대적으로 “담배꽁초를 차창 밖으로 버리지 맙시다!”라는 캠페인을 벌인다지만, 그 모두를 단 번에 예전처럼 되돌릴 수는 없다. 사람이 지어낸 것은 사람이 다시 만들 수 있겠지만, 자연이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하는 데는 오직 ‘시간’이라는 약밖에 없을 것이다.
담배꽁초 하나, 인간의 안이하고 무례한 행동 하나가 물이 오르던 나무들과 난만히 피어나던 꽃들과 그 안에서 살아가던 작고 여린 생명들을 죽였다. 그리고 그 와중에 양양 출신의 소설가 이경자 선생의 집필실도 불탔다. 이경자 선생이 쓰린 속내를 애써 감추며 내민 두 장의 사진 속에는, 작가의 땀과 눈물과 손때가 밴 소박한 한옥 한 채와 그것이 몽땅 녹아내린 듯 말끔하게 사라져버린 공터가 선명한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오랫동안 모았던 소설의 자료들도 화마의 아가리에 삼켜졌다. 작은 ‘실수’ 하나가 이처럼 많은 것들을 앗아갔다.
오만한 인간들은 가끔씩 저희가 자연을 이겼다고 착각한다.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기 마련이기에 어떤 희생과 헌신도 당연하다 생각해버리는 이기적인 철부지처럼, 밑바닥을 드러낼 때까지 마구 퍼내어 써도 무방하리라 생각한다. 그러다 이따금 ‘재앙’을 맞은 후에야 그 무서운 위력을 새삼스레 느낀다. 자연은 한없이 자애로우면서도 엄격한 부모다. 그는 한 번도 인간을 보살피거나 가르치는데 소홀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교훈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오직 미욱한 인간의 잘못일 뿐이다.
다시 봄이다. 아름답고 찬란한 봄, 그러나 그것에 감사할 줄 모르는 인간에겐 얼마든지 가혹하고 잔인해지는 계절이다. 더 낮아질지어다. 높은 나뭇가지를 흔드는 바람이 내 귀에 속살거리는 것만 같다.
/김별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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