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박물관과 정치

요즘 나라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니 모든게 정치판 일색으로 문화는 영 뒷전이다. 그렇다면 정치가 모름지기 백성을 편안케 하고 앞을 내다 보고 백년대계를 세워야 할텐데, 백년은 커녕 과거 그랬듯이 집권기간 연장만을 노리고 있으니 나라의 장래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의 엉뚱한 고구려사 왜곡이나 일본의 독도점유 야욕이 노골화되고 있는 이때, 우리가 정말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심각하게 되묻고 싶다.

올 시월이면 용산에 건립중인 국립중앙박물관이 드디어 다시 문을 연다. 현 위치로의 부지결정 문제나 정권교체기마다 정치적 이유로 이전해야 했던 일 등등 숱한 문제를 안고 왔지만, 이제야 겨우 바로 자리잡게 되었다.

국립박물관은 우리나라 역사가 살아 숨쉬는 공간이다. 그러나 우리 역사의 보따리인 국립박물관이 정치논리에 휩쓸려 몇 번이나 이삿짐을 싸고 풀고 했는지 모른다. 박물관이 역사를 떠나 정치논리에 휩쓸리고 정치마당에서 춤을 추었다. 그러나 정치는 정치요, 역사는 역사일 뿐이다.

미테랑대통령은 루브르박물관 리모델링 설계를 중국계-미국건축가 아이언 페이에게 맡기도록 배려한 바 있다. 결과물은 멋있는 새 계획, 글라스-피라미드로 나타났고, 자존심 강한 파리지앵들도 이제 그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정부가 정치행사로 박물관을 옮기거나 새로 짓는 것이 아니라 멋있는 건축계획을 만드는 데 대통령이 나서서 책임지고 실질적인 도움을 준 것이다.

우리의 경우를 돌아보면 낯이 뜨겁다. 1972년 경복궁안에 국립박물관 건물을 신축하여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얼마 지나지 않은 1986년 그걸 버리고, 지금은 헐어 없어진 중앙청건물을 국립박물관으로 사용토록 하였다. 1997년 중앙청을 헐고 임시용으로 현재의 국립박물관건물을 경복궁 궁역내에 다시 신축하기에 이르렀고, 급기야 2005년 용산으로 국립박물관을 이전 재개관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30년내에 무려 네 번씩이나 건립-철거-재건립에 부산을 떨었다.

이러한 일련의 결정은 그때마다 새로 부임하는 대통령의 취임과 맞춘 것처럼 보여졌고, 독립기념관이나 전쟁기념관등의 건립도 그런 경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박물관의 건립을 우리 역사의 창달이나 보존을 염두에 두고 추진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이벤트로 다루어 왔던 것이다. 후진국 빼고는 세계 어느 나라의 문화정책도 이 정도로 심하게 정치놀음에 휘둘리지는 않는다.

2005년 오늘 과천의 국립현대미술관 이전문제가 또다시 논의되고 있다. 어지러운 전철을 또다시 밟고 있는 중이다. 1984년 덕수궁에 있던 미술관을 과천 산속에 지어 놓고 일반인의 접근이 어려운 요새처럼 만들어 놓았다가, 1998년 덕수궁에 분관을 만들고, 다시 불편하다고 현 기무사자리에 새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짓겠다는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참으로 한심한 일이 반복해서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 혈세가 낭비되고 있는 것이다.

한때 체육이 정치판에서 춤을 추던 때가 있었다. ‘88올림픽’ ‘2004월드컵’등은 그러한 체육정치의 결과물이다. 이를 통하여 위정자는 국민을 하나로 모으는 성과를 이루어내기는 했지만, 선진국들중에서 그러한 정치놀음을 하는 나라는 단 하나도 없다. 뿐만 아니라 박물관이 그러한 카타르시스의 소재가 되는 나라 또한 찾아보기 어렵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세우기도 어렵지만, 한 번 만들어지면 없애기는 더욱 어렵다.

이제라도 우리 모두 정신 똑바로 차려 애꿎은 정치놀음에 박물관, 미술관이 춤을 추고 그 결과 쓸데없이 예산만 낭비되는 일이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해야겠다.

/이 종 선 경기도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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