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대학로에서 공연되고 있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세계적 극작가 아리엘 돌프만의 디 아더 사이드의 회당 유료관객은 평균 100명이 채 안 된다. 객석 700여석 대비 15%에도 미달하는 초라한 숫자이다.
작년 일본 신국립극장이 한국의 연출가 손진책을 초빙하여 세계 초연, 일본 연극계로부터 찬사를 받은 한국판 공연으로 권성덕, 김성녀 두 배우들의 섬세한 내면연기가 단연 돋보이는 뛰어난 무대임에도 불구하고 관객의 관심은 극히 저조한 것이다. 순수예술의 위기에 대한 염려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그 정도로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음을 경고하는 징표인 셈이다.
대학로 극장의 연극관객이 줄어들고 서점에서는 시집이 팔리지 않는다. 지난 달 고양에서 열린 아트 마켓에서도 연극과 무용에 대한 반응은 그리 신통치 않은 형편이다.
삶에 대한 진지한 통찰이나 구도자적인 자세로 혼신을 다한 순수예술보다는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흥미 위주의 볼거리에 사람들이 몰려든다. 공연 기획자들 역시 관객동원이 수월한 작품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화부가 공연예술과를 기초예술진흥과로 명칭을 바꾸고 갖가지 대책을 마련하려는 노력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부와 일선 문화공간 운영자들은 시민들이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가치, 그러나 문화토양을 기름지게 하는 정말 중요한 가치에 대해서도 시민들을 계도, 관심을 이끌어 내야 할 의무가 있다.
우선 문화예술 장르들, 그리고 문화예술 공간의 서비스 체계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 우리의 예술 현장에는 문화소비자에 대한 서비스 정신이 부족하다. 21세기는 문화의 시대이니만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문화예술의 소비를 늘려야 한다는 지극히 타당한 구호만으로 대중을 설득하기란 사실상 어렵다.
예술은 소비자에게 이를 수용하는데 대한 편리함도 제공해야 하고, 내용에 대한 과대포장 없이 겸허하게 정보를 제공하여야 한다.
물론 예술가와 극장 관계자 어느 누구도 이같은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문화공간을 운영하는 한사람으로서 명백한 의무를 치열하게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책감에서 반성을 한다. 무엇보다도 부대시설의 안락함과 청결함에서부터 시작해서 소비자에게서 받는 입장료에 합당하거나 그 이상의 프로그램을 제공하는데 신명을 다하고 있는지 자문해 보지만 실제로 그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술경영이라는 것은 궁극적으로 그 어느 부문에서나 질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다. 즉 극장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과 서비스에 대해 신뢰를 쌓아 시민들의 지지를 확보하여야 한다. 극장을 찾지 않는 시민들의 무관심을 탓하기 전에 문화예술의 진정한 가치를 실감할 수 있도록 예술가와 예술경영자들이 과학적인 마케팅과 교육을 병행하여 차근차근 풀어가는 방법밖에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장구한 세월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높은 지위, 넓은 아파트 혹은 가족의 이익만큼이나 더 중요한 그 무엇에 대한 합의와 공감이 이뤄질 때라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날이 반드시 올 것임을 의심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구 자 흥 의정부 예술의전당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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