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해신’이라는 방송드라마가 뜨고 있다. 해상왕 장보고를 드라마로 만들어 방영하는 것이다. 본적이 없지만, 자문에 참여한 적은 있다. 5~6년전부터 장보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학문적인 연구성과는 물론이고 만화영화, 게임 등도 만들어졌다. 필자는 장보고호라는 뗏목을 만들어 중국남쪽에서 한국의 인천 완도 제주도를 거쳐 일본까지 이르는 해상항로를 답사하였다.
이렇게 장보고가 1200년 만에 부활하여 대중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처음에는 김대중 정부의 정책과 이미지화작업의 한 부분인 면도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시대적인 상황이 그를 요구한 것 같다. 역사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이기 때문이다. 변화무쌍한 세계질서의 대양 속에서 좌초를 면하고 성공적인 항해를 이룩하는 모델의 하나로서 필자는 장보고의 ‘동아지중해 물류장역할’을 들고 있다.
21세기는 경제행위를 통해서 세계화(globalization)와 지역화가 동시에 추진되는 시대이며 물류통로 및 해양자원으로서 해양의 경제적 가치가 부각되는 시대이다. 한국 무역품들의 99.7%는 해양으로 이동한다. 또한 한류에서 확인하듯이 문화와 경제가 함께하는 시대이며, 개방과 다양성의 시대이다. 그리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극복할 통찰력과 리더십을 가진 인재가 필요하고, 강한 공동체의식이 절실한 시대이다. 바로 장보고가 살았던 시대가 그러했고, 그는 그 시대를 활용하여 오히려 그만의 나라를 건설하였다.
장보고는 변화하는 국제질서의 실상을 인식하고 충분하게 활용한 전환기의 리더였다. 9세기 초는 본격적인 국가간의 경제교류도 활성화되고, 느슨한 형태나마 동아경제권의 형성이 필요해졌다. 북방 서역 남방에서 당의 경제권으로 수입된 물건들과 자체생산물들은 신라와 일본으로 수출되어야 했다. 신라와 일본의 토산물과 공산품들도 당에 수출해야 했다. 특히 산업이 발달하고 교역능력이 뛰어난 신라는 일본시장을 개척하고, 당시장도 개척할 필요가 컸다. 그는 ‘大使’라는 독특한 직책으로 政軍商을 장악하여 청해진에 본거지를 차리고, 동아지중해의 ‘해상왕’(The Trade Prince of the Maritime Commercial Empire. 라이샤워 설)이 되었다. 그의 성공을 뒷받침한 것은 조선술 항해술(sea power) 같은 하드웨어 외에 소프트웨어가 있었다.
장보고는 동아지중해의 물류체계를 유기적으로 네트워크화하는데 성공하였다. 당나라에는 대운하의 주변과 해안가의 중요한 지역에 신라인 집단거주지가 있었다. 특히 신라방 자치권을 행사할 수 있었던 일종의 자유무역항 혹은 경제특구에 해당한다. 그는 環黃海圈의 요소요소에 포진한 거점도시들을 유기적으로 연결시켰고, 청해진을 본격적인 자유무역지대로 삼았다.
장보고는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하여 인적자원 또한 유기적인 시스템 속에 네트워크화 시켰다. 국적이 다른 재당신라인과 본국신라인, 재일신라인의 민간상인조직을 연결시켜 청해진에서 관리하고, 필요와 장소에 따라 역할분담을 조정하였다. 무엇보다도 그들의 항선조직을 일원화시켜 해로(sea lane)를 안정적으로 확보하였다. 현재 중국은 대중화경제권을 구축할 목적으로 전세계에 산개된 화교들을 네트워크화하고 있다. 우리는 조선족을 비롯하여 재일교포, 까레에스키 등이 동아지중해권의 여러 지역에 포진하고 있다. 장보고처럼 이들과 본국의 국민을 연결시키고, 이들의 경험과 지식, 보유한 물류시스템 등을 수용하고, 반대로 이들에게 지원을 하면서 하나의 통일되고 유기적인 시스템 속에 편재시킨다면 한민족경제권의 형성에 유리할 것이다.
장보고는 그 외에도 포용성 스케일 인간애 등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다양한 발전모델을 제시할 수 있다.
/윤 명 철 한국해양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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