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동방무례지국

스산한 가을 비바람이 겨울을 재촉하고 있는데 마음 한구석이 무겁다. 지금쯤이면 경쾌한 캐럴속에 한해를 보내는 뿌듯함이 앞서야 함에도 주변은 그렇지 못하다. 이는 비단 먹고 살기가 점점 더 어려워져 가기 때문만은 아니다.

세상 돌아가는 꼴이 너무나 한심하고 그래서 더 걱정스럽다. 자고 나면 데모가 끊이지 않고 사람다치는 험한 기사가 신문을 메운다. 정치는 정치대로 제 갈길을 못잡고 있고, 경제는 휘청거리고 있다. 사회는 사회대로 각계각층의 배타적인 목소리만 넘치고, 눈을 씻고 보아도 국민통합이나 미래의 비전을 얘기하고 있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이래서는 안 된다. 나라가 잘 되려면 교육이 탄탄해야 하고 그중에서도 인성교육(예의교육)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지금은 너나없이 자기 편할대로 사는 세상이다. 남에 대한, 남을 의식하고 남을 위한 배려는 찾을래야 찾아볼 수가 없다. 어느날 갑자기 사회가 험악하게 변했다기보다는 우리 사회의 근본을 지탱하는 질서, 예의가 무너져 버렸다.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인류학에서는 보통 동양과 서양을 나누면서 서양문화는 죄악의 문화(Guilty Culture)로, 동양은 염치의 문화(Shame Culture)로 구분한다. 서양에서는 매사의 기준을 죄가 되느냐 아니냐에 두고 있는 반면에, 동양에서는 체면과 염치를 우선시한다는 분석이다.

부시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은 그러한 기독교적인 가치관에서 나온 것으로 이해하면 빠르다. 반면에 우리는 결과의 죄의식보다는 남과의 관계에서 체면을 우선시하는 문화풍토속에서 자라왔다.

우리나라가 예로부터 중국을 제치고 동방예의지국이라 칭송받은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민주주의와 공자식의 예의는 어찌 보면 상충되는 대립개념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는 공자나 맹자보다 더 공자적이고 맹자적인 전통을 견지해 왔었다. 민화 문자그림의 주된 소재는 효제충신예의염치(孝悌忠信禮義廉恥)로 충효사상과 예의, 그것은 바로 우리의 일상생활과 도덕적 가치관을 지배했던 논리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성적 줄서기 ‘수능시험’으로 온나라가 홍역을 치렀다.

시험 때문에 출근을 한시간이나 늦게 하고 비행기마저도 피해가야 했다. 성적이 좋으라고 핸드폰 문자메시지로 조직적인 부정을 저지르기까지 법석을 떨었다. 이 아이들이 크면 또 무슨 짓을 저지를까 겁부터 난다. 시험의 결과만 따지는 성적우선주의야말로 오늘의 우리나라를 망치고 있는 무서운 이유일 것이다. 수치로 따지는 시험만큼 인격시험, 도덕시험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나혼자만의 상념은 아닐 것이다.

예의란 사람과 사람사이에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비단 공간적인 거리뿐만이 아니라, 인격적인 거리도 중요한 요소가 된다. 우리의 일상에서 공중속에 던져지면 깜짝깜짝 놀랄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이제는 만성이 되다시피 하여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지나치기는 하지만 우리 국민들의 무례함이 도를 넘친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동방무례지국’이 되어가고 있다고 느껴질 정도이다. 도가 지나친 것중 으뜸은 핸드폰 사용이다.

심리학자의 분석에 의하면, 사람과 사람사이에는 일정한 거리가 유지되어야 한다. 밥을 먹으면서도 사방을 둘러보는 이유는 공간이 침해받지 않나 하는 동물적인 방어본능 때문이다. 핸드폰의 무례한 사용은 남의 공간을 무차별 침범하는 꼴이 된다. 그럼에도 아무런 제지나 가책을 받지 않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핸드폰 사용이 일상화되어 가고 있음은 도덕이 급속하게 무너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 종 선 경기도박물관장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