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력은 국토의 넓이에 비례한다. 고구려가 가장 부강했을 때, 영역은 북은 송화강에서 남으로는 한강에 이르렀다. 한강을 사이에 두고 백제와 대치하였고, 신라는 고구려에 인질을 파견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충청도에도 고구려의 유적이나 유물들이 많이 남아 있고, 온달장군이 싸우다 전사했다고 전해지는 산성도 있다. 경주 호우총 고분에서는 광개토대왕의 장례를 추념하는 기념용기가 발굴되기도 하였고, 영토의 확장을 보여주는 비석들도 도처에 남아 있다.
고구려의 주 활동무대는 초기에는 만주 벌판이었고, 후기에는 평양이 중심이 되었다.
돌무지무덤이나 계단식 피라미드를 비롯해서 벽화로 유명한 무용총등이 만주에 아직 그대로 남아 있고, 평안도 황해도 일원에는 궁궐유적을 비롯한 많은 고구려유적들이 남아 있어서 고구려문화의 화려 강건함을 웅변해주고 있다. 경기도에도 고구려의 남단 전진기지로 중간성이나 산성보루등이 60여곳이상 남아 있고, 일부 고분이나 생활유적들도 간간이 확인되고 있다.
이와 같이, 현존하는 유적이나 유물들로 분명하게 증명되는 고구려 역사를 한낱 중국의 일개 변방사로 조작하려는 ‘동북공정’ 프로젝트는 순진하게 ‘단순한 역사왜곡의 차원’으로 넘길 일이 아니다. 이는 한국과의 물리적 충돌에 대비한 영토선점의 선수를 치는 행위이며, 조선족 동포 수백만을 완전하게 한(漢)족화하려는 치밀한 합병음모를 깔고 있다.
한발 늦었지만 우리도 이제는 무언가 치밀한 계획을 차곡차곡 준비해야 한다. 중국의 동북공정 못지 않은 엄청난 준비와 체계적인 실행계획들이 수반된 ‘고구려공정’ 내지 ‘동북아특별전략’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 경우 학술적인 준비 못지 않게 심리적·전략적·외교적인 준비가 병행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 역사의 본 줄기인 고구려의 기상을 되살리고자 하는 국가적인 장기계획이 수립되고 하나하나 착실하게 대비해 나가야 한다.
우선 고구려연구 현황에 대한 종합적인 파악이 선행되어야 한다. 국내학자의 업적은 물론이고 중국이나 일본 등 제3국 학자들의 연구성과를 집약하고, 그에 대한 치밀한 분석이 뒤따라야 한다. 근래의 연구업적은 물론 과거 국내외 사료에 등장하는 고구려사의 기술에 대한 전문적인 분석이 병행되어야 한다. 최근에 정부의 지원하에 설립된 고구려연구재단이 이러한 학술작업에 대한 지원위주로 사업을 진행한다고 하니 크게 기대해볼 일이다.
경기도일대에 집중되어 있는 고구려 南界유적들의 대대적인 기초조사와 함께 필요한 유적에 대한 학술적인 계획발굴이 이루어져야 하겠고, 동시에 유적의 현상을 완벽하게 보호하는 장단기 보존조치도 절실하다. 일반의 관심을 고조시키기 위한 사업의 하나로 고구려문화의 보급을 위한 대규모 특별기획전을 활발하게 개최하여야 한다. 또 만주지역에 남아 있는 거대한 석조피라미드를 중심으로 실물 크기의 광개토대왕비석이나 벽화고분을 포함한 대규모 고구려박물관-고구려테마공원을 빨리 만들어야 한다.
안으로 국사교육 강화차원에서 전국민을 대상으로 고구려의 역사와 문화를 다시 교육해야 한다. 밖으로는 국제적인 협력관계속에서 ‘고구려사=한국사’라는 공인을 받을 수 있도록 뛰어야 한다. 국사의 외국어 번역작업이나 외국에 한국학을 장려하고 외교라인을 통한 고구려사 인식의 획기적인 전환을 시도하여, 중국이나 일본의 엉뚱한 역사왜곡이 발붙일 틈을 주어서는 안 된다.
이 모든 사업은 이제 정부에게만 맡겨서는 소기의 성과를 이루어낼 수 없다. 고구려를 잃는 것은 우리의 역사를 도둑맞는 것이고 우리의 영토가 잠식되는 수치스런 일이다. 일제의 침탈을 고발하기 위해서 전국민이 성금을 모아 독립기념관을 건립할 때의 정신으로 되돌아가서, 국민 모두가 ‘고구려성금’을 거두어 고구려를 지키고 고구려역사를 되찾는 운동에 동참해야 한다. 지금이 바로 남남갈등에서 벗어나 미래지향적인 국가관을 심어야 할 때이다.
/이 종 선 경기도박물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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