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접근금지 ‘구멍’… 피해자 보호 ‘불안’

주거지 격리·100m 이내 접근금지 등 긴급임시조치 적용하지만 제재 허술
어겨도 확인 어렵고 ‘솜방망이’ 처벌, 대책 시급… 警 “제도 개선 검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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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미추홀구 한 상가주택 203호에 사는 50대 A씨는 지난 1일 저녁 “남편이 나를 때렸다”며 112에 신고했다. 당시 A씨는 술에 취한 남편 B씨가 상을 엎자, 이 모습을 휴대폰으로 촬영하려다 폭행을 당했다. A씨가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경찰에 신고한 것은 2022년에 이어 두 번째다.

 

당시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들은 가정 폭력이 다시 일어날지 모른다고 판단, B씨가 A씨에게서 100m 이내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조처했다.

 

하지만 B씨는 이 같은 경찰의 조처를 무시하고 A씨 집 바로 옆 호실인 201호에서 이틀간 머물렀다. 해당 건물 201호와 203호 모두 B씨 소유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B씨는 급기야 A씨 집을 찾아가 문을 열려 하거나 A씨에게 전화를 걸기도 했다.

 

A씨는 “경찰이 남편을 분리했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바로 옆집에 있었고 너무 소름이 끼쳤다”며 “남편이 집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를 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너무 불안했다”고 말했다.

 

접근금지 등 가정 폭력 가해자에 대한 경찰의 긴급임시조치가 사실상 무용지물에 그쳐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경찰의 조처를 위반해도 형사 처벌을 받지 않는 데다, 가해자가 실제 접근 금지 처분을 잘 지키는지 경찰이 확인할 뾰족한 방법도 없기 때문이다.

 

10일 경찰청 등에 따르면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은 현장 출동 경찰관 판단에 따라 가정 폭력이 재발할 우려가 있을 경우 긴급임시조치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조치는 ▲피해자 주거지로부터 격리하는 1호 ▲피해자 주변 100m 이내 접근을 금지하는 2호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을 금지하는 3호로 구성됐다.

 

하지만 이를 정당한 이유 없이 어겼을 때 제재 규정은 단순 과태료, 즉 ‘솜방망이’에 그치는 실정이다.

 

임시조치를 내린 경찰관이 가정폭력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물리적, 또는 통신망을 활용해 접근하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가해자에 대한 위치추적, 통신 이용 조회 등을 할 수 없어서다.

 

전문가들은 최근 감시 및 제재 수단이 없는 경찰의 긴급임시조치의 허점이 드러난 만큼 경찰의 적극적인 개입이 가능하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지난달 화성시에서 가정폭력 가해자인 30대 남성이 경찰의 접근 금지 처분을 어기고 피해자를 찾아가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승기 리엘파트너스 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는 “경찰의 긴급임시조치를 어기면 형사 처벌하도록 시급히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며 “가정폭력 가해자의 위치 추적, 긴급 체포 권한도 부여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긴급 임시조치 위반 시 형사 처벌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 방안을 검토 중”며 “가정 폭력 가해자에 대한 위치 추적 등은 단계적으로 검토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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